“자, 이제 스트레이트 재킷(정신이상자나 폭력적인 사람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특수복)을 입을 직원을 소개합니다.” 로버트 콜라조가 호명되자 사람들은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냈다. 콜라조는 단상으로 올라가 환하게 웃으며 스트레이트 재킷을 입고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날 저녁 아들이 스트레이트 재킷을 입고 있는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놀랐던 부모는 설명을 듣고 나자 곧바로 사진을 액자에 담고 블로그에 올려 아들 자랑을 했다.
1998년 설립된 웹호스팅 기업 랙스페이스(Rackspace)는 2000여명의 직원 중에서 광적으로 열심히 일한 직원을 찾아내 매달 한 명씩 시상한다. 이때 수상자는 미친 사람처럼 열심히 일했다는 의미로 정신이상자에게 입히는 스트레이트 재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 사진은 이메일, 개인 블로그, 페이스북을 통해 퍼지면서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된다.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우수 직원을 발굴해 ‘이달의 직원’이라는 이름으로 칭찬하고 사진을 벽에 걸지만, 정작 재미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부족해 보인다. 랙스페이스 사례처럼 직원의 수상 소식이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고, 블로그를 통해 퍼지게 하려면 좀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공들여 우수 직원을 뽑고 시상해도 당시에만 잠깐 화제가 될 뿐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마치 돈 쓰면서 여행은 다녀왔는데 어디에 가서 무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공사례를 확대 재생산하는 기업경영 기법으로 스토리텔링이 정착하려면 기업 내에 스토리텔링 인프라가 필요하다. 스토리텔링 인프라는 크게 흥미로운 스토리를 수집하거나 만들어내는 체계와 스토리를 가공해 사내에 전파하는 체계로 구분할 수 있다.
P&G는 1957년 회사가 처음 시판한 제품부터 관련 사진과 스토리 등을 수집해왔고 2003년 이를 모아 P&G 역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핵심가치를 직원에게 전파하기 위해 주제별 스토리를 수집한다. 예를 들어 ‘다양성 활성화 주간’을 선정하고 사내의 소수인종, 장애인, 여성가장 직원들의 스토리를 모아 가공해 직원에게 배포한다.
스토리를 모으기 힘들다면 직접 만들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신문사들이 해마다 마라톤 대회를 주관하고 우수 기업을 선정, 시상해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피자헛은 독특한 ‘칭찬릴레이’로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직원들에게 각종 재미있는 상을 수여해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조직의 성과를 상향 평준화해가는 것이다. 책임자급에게는 ‘횃불상’ ‘돋보기상’ 등을 준다. 횃불상은 활활 타오르는 횃불과 같은 열정을 쏟아부어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에게 주어진다. 돋보기상은 아무리 작은 고객의 의견이라도 꼼꼼하게 챙겨서 놓치지 않는 사람이 받는다.
이 밖에도 마법의 요정처럼 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주는 ‘알라딘램프상’, 직영 매장과 프랜차이즈 매장이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라는 의미를 강조한 ‘어깨동무상’, 삼천리 방방곡곡에 피자헛 매장을 개설하기 위해 땀 흘리는 것을 칭찬하는 ‘삼천리상’ 등이 있다. 일반 직원들에게는 기둥 역할을 하는 직원에게 수여하는 ‘기둥상’, 신속한 서비스를 잘해서 받는 ‘스피드상’ 등을 준다. 그 결과, 매달 하는 ‘칭찬릴레이’ 행사에는 직원 참여도가 매우 높다. 칭찬카드 추첨에 참여하기 위해 매달 2000~3000통의 칭찬카드가 전국 매장에서 날아올 정도라고 한다.
스토리를 수집한 뒤에는 이를 가공해 직원들에게 전파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보나 사내 뉴스,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한 국내 은행은 사례를 들어 핵심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사례집을 만들어 직원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사례집에 들어갈 스토리를 수집하기 위해 교육을 받으러 연수원을 찾은 행원들에게 직접 스토리를 적어 내게 했고, 사례집에 그 행원들의 이름을 명시했다. 이렇게 행원들이 직접 적어낸 스토리로 만든 사례집이니 소중히 여기고 자주 보게 된다. 이 밖에도 여러 기업들은 사보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특이한 사연이나 취미를 가진 직원들을 취재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이 모두가 스토리를 유통하기 위한 장치다.
중요한 것은 소식을 가공할 때 ‘고객이 직원이니 누군가는 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사내 뉴스, 이메일의 개봉 비율이 아닌 전파 비율을 측정지표로 삼아 재미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랙스페이스 직원 부모가 아들의 수상 소식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외부 사람들이 P&G의 역사관을 방문하고 싶어하는 것도 스토리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사람들이 진심을 다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보나 사례집을 정식으로 출판해 서점에 내놓으면 팔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기업의 스토리를 평가하면 분명 개선점이 보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PRIDE 현대카드가 일하는 방식 50’은 눈여겨볼 만한 책이다. 원래 사내 교육을 위한 사보로 제작했는데, 협력 업체에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탔고 단행본으로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 타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온라인 역사관을 운영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자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창업 이후 현재까지의 주요 사진과 스토리를 연대순으로 담아 방문자들이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창업주의 유물 몇 점과 사진을 모아 만든 기존 형태의 기업 역사관은 아무런 감동도, 영향도 주지 못함을 깨달은 기업이 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기업의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미있는 스토리를 모아 마치 역사 드라마를 제작하듯 만들어야 한다. 스토리를 수집, 가공, 전파하는 체계가 발전하는 만큼 기업 내 스토리텔링은 점점 더 효과적인 경영방식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재미난 스토리로 더 많은 직원과 독자를 사로잡기를 바란다.
김용성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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