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네요, 답이. 적자 난다고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료 올리면 소비자나 정부 반발은 뻔하고요. 보험료 할인 구조는 늘어가는데 외제차 수리비도 함께 올라가고.."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 관계자의 '한숨'이다. 손보사들이 늘어나는 자동차보험 적자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자동차보험은 손보업게 전용 텃밭이지만 '공공재' 성격의 의무 보험이다. 손해율 증가로 보험 운영 적자가 난다고 해도 손보업계가 내팽겨칠 수 없는 분야다.
그렇다고 보험료를 올리자니 보험 소비자 반발이 불보듯 뻔하다. 최근에는 적게 운전할 수록 보험료를 깎아주는 마일리지 특약이나 블랙박스 특약, 다이렉트 보험 등 할인상품도 쏟아져 보험 원가 자체가 낮아졌다. 경기 침체 국면에 보험 가입자마저 줄어 손보업계 전반적 경영상태도 악화하고 있다. 손해 보험에 유례없는 추운 겨울이 예고되는 배경들이다.
◆ 자동차보험, 손해율 77%가 한계치…사상 최고치 90% 예고
손해율이란 고객이 낸 보험료 중 실제 보험금으로 나간 비율이다. 손보업계에서는 자동차보험 손해율 77%가 손익 마지노선으로 알려져 있다. 고객이 자동차보험료로 낸 돈이 한해 100만원이라면 77만원 정도는 보험자에게 사고 수리비, 견인비, 긴급 서비스 등으로 실제 보험자에게 쓰인다. 나머지 23만원은 보험인력 인건비, 보험 수수료 등 보험상품 운영유지비 성격이다.
문제는 요즘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평균 80% 중반대까지 치솟았다는 점이다. 손보업계 입장에서는 자동차보험을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난다. 지난 4월 국내 손보사 손해율은 86.1%로 치솟았다. 7월에는 88%로 더 악화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과 비교해 최대 8.1% 손해율이 상승한 구조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3회계연도 1분기' 손보사 경영실적 자료를 봐도 올해 4~6월 자동차 손해율은 지난해보다 6.2% 올라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63억원 흑자였던 자동차보험 손익은 올해 176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1년새 2023억원이 줄어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손보업계에서는 올해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90%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상 최고치다. 이를 손보업계 전체 규모로는 1조2000억원 손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은 운전자에게는 의무보험이기 때문에 적자가 난다고 해서 보험료를 쉽게 올릴 수도 없다"면서 "몇년째 자동차보험 관련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쉽게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 늘어나는 보험료 할인혜택…줄지 않는 자동차보험 보상원가
자동차보험 적자가 커지면서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도 급감하고 있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회사가 계약자 등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자본 여력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잣대다. 올 2분기 국내 주요 보험회사의 지급여력비율(RBC) 264.3%로 1분기보다 20.6%p 내려앉았다. 생보사 재무건전성이 함께 급격히 나빠진 셈이다.
특히 손보사 중에서는 현대하이카다이렉트의 RBC가 135.6%로 가장 나빴다. 한화손보(147.1%)와 흥국화재(159.1%)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하이카다이렉트는 자동차보험만 취급하기 때문에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보험사는 보험업법에 따라 기본적으로 RBC를 항상 10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 금융감독은 금융위기 등 외부 악성 요인에 대비해 150% 이상 유지를 권고하고 있다. 현대하이카다이렉트의 경우 권고 수준 아래를 밑도는 것이다.
현대하이카다이렉트 관계자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자동차 보험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라 현재로서는 올라가는 손해율을 방어할 뾰족한 돌파구가 없다"고 덤덤히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 발표 물가지수에 자동차보험이 들어가면서 보험료 가격 경직성이 커졌다"면서 "보험 가격이 사후원가 측면이 강한데 올라가는 손해율을 가입비를 낸 후 사후 반영할 수 없어 실제 보험원가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손보업계는 2008년 이후부터 손해율이 올라가는 구조가 지속됐다고 보고 있다. 이전까지는 손해율이 올라가는 해와 떨어지는 해가 주기적으로 반복됐지만 이후부터 상승 흐름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2008년 이후 손해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요인으로는 보험료 할인 상품 증가가 1순위로 꼽힌다. 자동차를 연간 7000km이하로 적게 탈 경우나 블랙박스를 장착해 사고 책임을 가리기 쉽게 하는 경우 보험료를 이후 5%까지 돌려주는 상품들이다.
지난해 12월 손해보험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LIG손해, 메리츠화재 등 상위 5개사 평균 자동차 보험료는 67만201원이었다. 이는 2011년(72만3113원)과 비교해 7.9% 감소한 것이다. 보험료가 내려간 결정적 요인은 블랙박스 장착이었다. 블랙박스 장착 고객에게는 3~5% 할인을 해줬고 정부의 자동차보험 가격 안정화 기조에 따라 지난해 초 자동차보험료를 역시 평균 2.5% 정도 떨어졌다. 최근 적자구조가 이런 보험료 할인에 따라 보험 수익 자체가 '파이'가 줄어든 셈이다.
현대하이카다이렉트 관계자는 "블랙박스 장착 등으로 손해율이 낮은 고객군보다 손해율이 여전히 높은 일반 운전자들의 보상원가가 늘어나고 있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면서 "일반 운전자들이 보상원가는 여전히 높기 때문에 손해율이 낮은 고객들의 보험료를 깎아줄 수록 손해율은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자동차보험 적자탈피 해법 찾기 "외제차 수리비 현실화라도.."
자동차보험료 적자구조를 어떤 해법으로 풀지가 결국 관건이다. 문제는 손보사 당사자들도 하나 같이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는데 있다.
자동차보험에 의존도가 높은 손보사들은 일반보험으로도 상품확대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동차보험 적자를 다른 보험 가입을 늘려 매우기 위한 시도다. 현대하이카다이렉트가 대표적이다. 온라인 자동차보험 전업사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운전자보험, 상해보험 등 일반 보험영역으로 진출을 준비 중이다.
다른 해법은 자동차보험 관련 광고 마케킹비용 등 사업비를 축소하는 것이다. 자동차보험을 팔아 적자를 볼 바에는 차라리 관련 보험에 들어가는 사업비를 줄여 적자를 줄인다는 계획인 셈이다.
블랙박스 장착 고객에 대한 할인혜택도 줄이고 있다. 동부화재는 지난 8월 블랙박스 장착한 차량에 대한 자동차보험 할인율을 기존의 5%에서 4%로 낮췄다. 2009년 이후 블랙박스 차량에 대해 손보사가 할인 경쟁을 벌이면서 1~2% 수준이던 할인율은 최대 5%까지 치솟았다. 마일리지 할인 혜택까지 더해지면서 손보업계에도 '제살 깎어먹기'은 더이상 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외제 자동차 보험료 인상 카드도 매만지고 있다. 비싼 외제차 수리비도 손해율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위 5개 손해보험회사들은 지난해 지급한 수입차 수리비는 6541억원으로 2011년보다 25%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국산차 수리 보험금은 1.9% 밖에 늘지않았다.
보험연구원도 지난 3일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수리비 개선을 통한 자동차 보험료 합리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수입차 대체부품 시장을 활성화해 수리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수입차 업계는 "보험업계가 저렴한 수리만을 추구하며 수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면서 "안전과 품질 문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한 손보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보험료가 손해율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전체 5%로 크지는 않다"면서 "수입차 수리비 문제가 핵심 해법은 아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 트위터 @mean_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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