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정몽원, 아이스하키팀 20년째 믿음으로 이끌어…스포츠에서 배운 인내와 신뢰로 위기 돌파

입력 2013-09-10 17:09   수정 2013-09-11 00:26

CEO 오피스 - 절치부심 리더십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직원들 실수에도 호통대신 진심어린 걱정
늘 낮은 자세로 상대방 대하는 총수강조한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58)은 ‘은둔형’ 경영자다. 좀처럼 외부에 얼굴을 비치는 일이 없다. 강연·인터뷰 요청에도 “회사 일 챙기기도 바쁘고, 딱히 나설 일도 없어서…”라고 손사래를 친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런 그가 만사를 제치고 꼭 챙기는 외부 행사가 있다. 한라그룹 아이스하키팀의 경기다. 지난 7일 경기 안양시 비산동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안양 한라’와 ‘대명 상무’ 간 경기에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중·일 3개국 프로팀 아이스하키리그전의 개막 경기였다. 경기 시작 3시간 전 도착한 그는 입장객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선수단 라커룸에도 들러 선수들의 몸상태를 챙기기도 했다.

정 회장이 아이스하키장을 찾은 건 벌써 20년째다. 그는 위니아만도 사장이던 1994년 남들처럼 야구나 축구가 아닌 비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했다. 국내에 고작 세 개 프로팀만 있는, 시쳇말로 ‘돈 안되는 종목’인 아이스하키를 왜 20년간 후원한 걸까. 한라그룹 관계자들은 “믿음과 신뢰, 그리고 의리가 정몽원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힘들 때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믿음’

한라그룹이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한 건 1994년. 당시 그룹 계열사였던 위니아만도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정 회장은 ‘에어컨 홍보’를 위해 팀을 창단했다. 물론 반대가 심했다. “1년에 수십억원의 운영비가 드는 데다 인기도 없는 종목을 왜 후원하느냐”는 불만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팀을 만들고 난 몇 년 뒤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룹은 부도가 났고 팀을 후원하던 위니아만도도 다른 회사에 팔렸다. 주변에선 ‘그만 (팀을) 해체하라’는 말이 쏟아졌다.

그때, 창단 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팀이 1997년부터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아이스하키팀의 우승은 위기를 맞은 정 회장과 그룹 임직원들에게 모처럼 웃음을 줬다. 정 회장은 “어려웠던 시절,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큰 위안이 됐다. 이렇게까지 선수들이 해주는데 아무리 어려워도 팀을 유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1998년 이후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등 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면서도 아이스하키팀은 끝까지 유지한 것. 그는 또 해외 출장 등 부득이한 일정이 있을 때를 빼고는 늘 안양 한라경기장을 꼭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다. 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은) 올해 초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꼬박 20년을 선수들을 자식처럼 대했다”며 “자비를 들여 선수들을 핀란드로 전지훈련을 보내줄 정도”라고 설명했다.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이긴 날, 정 회장이 회식 자리에서 외치는 건배사가 있다. ‘합력(合力)하여 선(善)을 이루리라’. 성경의 한 구절이다. 직원들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다. 그룹 임원은 “서로 간 믿음을 바탕으로 힘을 합하면 못할 게 없다는 뜻”이라며 “정 회장이 한라를 재기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귀띔했다.

군림하지 않는 겸손의 리더십

‘믿음의 철학’은 회사 경영에서도 한결같은 원칙이다. 정 회장은 소위 말하는 ‘재벌 2세’다. 그의 선친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고(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이 공중분해될 위기와 뇌졸중 투병을 겪고도 매번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보이며 ‘재계의 부도옹(不倒翁)’으로 불렸다. 그런 선친의 뒤를 이어 정 회장은 1997년 1월 한라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런데 1년도 채 안된 그해 12월 한라그룹은 부도를 냈다. 한때 재계 12위에 올랐던 한라그룹은 대부분의 계열사 경영권을 채권단과 다른 기업에 넘겨야 했다. 마지막 남은 건 한라건설 하나뿐. 그마저도 회생을 위해 30%의 인력을 구조조정해야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를 도운 건 직원들이었다. 노조 주도로 1006명의 직원 중 302명을 스스로 구조조정했다. 남은 직원들은 연·월차 수당 반납, 임금동결을 결의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정말 힘들었지만 고통 뒤에 얻는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직원들도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한마음 한몸이 되면서 한라그룹이 재기할 수 있었다.” 그때 이후 한라그룹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어렵더라도 회사와 직원들이 믿음으로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정 회장의 뜻에 따른 방침이다.

믿음에서 비롯한 특유의 겸손함도 갖췄다는 게 정 회장에 대한 주변의 평가다. 그룹 총수답지 않게 그는 늘 낮은 자세로 상대방을 대한다. 매년 7월20일 경기 양평에서 열리는 정인영 명예회장 추모행사에 가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겸손함에 놀란다. 추모행사 때마다 식사도 거른 채 손님을 맞는 것. 그룹 한 임원은 “테이블에 소주가 떨어진 것까지 알고 손수 들고 갈 정도로 사람들을 챙긴다”고 전했다.

결단력과 뚝심의 리더십

부드럽지만 결단력과 뚝심이 없었다면 위기를 돌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계열사인 한라건설이 건설경기 침체로 경영난을 겪게 되자 주력사인 만도가 한라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한 것도 뚝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조치였다. 처음에는 국민연금 등 만도 투자자들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정 회장은 증자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각종 보완책을 내놓아 시장의 신뢰를 지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도의 주가도 유상증자 발표 전 수준을 회복했다. 정 회장은 요즘 선친인 정인영 명예회장이 평소 가장 좋아했던 ‘학여역수행주’(學如逆水行舟·학문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다)란 중국 격언을 강조하곤 한다. 난관이 있으면 반드시 이를 돌파하고 극복할 수단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는 취지다.

이태명/전예진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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