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자식에 다 물려주더라도 5년간 소득 있는 것으로 간주

입력 2013-09-11 17:23   수정 2013-09-11 22:30

'무늬만 무일푼'부유층 노인, 기초연금 못받아

"저소득 근로 노인들에 더 많은 연금 지급" 취지
기초연금 소득공제도, 45만원에서 대폭 상향




나이 67세에 서울에 시가 3억원짜리(공시지가 1억9200만원) 집과 2억2000만원 정도의 예금을 갖고 혼자 살고 있는 K씨. 얼마 전 장남이 찾아와 예금을 자식들 이름으로 분산시켜 놓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월 20만원을 주는 기초연금을 타려면 예금을 한시라도 빨리 타인 명의로 돌려놓는 게 낫다는 얘기였다. 집은 1억800만원 기본공제를 받은 뒤 공시지가 기준으로 남은 가격 8400만원을 월소득으로 환산하면 35만원밖에 안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예금은 공제액 2000만원을 제외한 뒤 2억원을 월소득으로 환산하면 83만원에 이른다. 83만원이 올해 단독가구의 기초노령연금 지급 기준선인 만큼 예금을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지 않으면 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장남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내년 7월 기초연금 도입을 앞두고 K씨처럼 소득 상위 30%에 속하면서도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고 명목상 기초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는 사람들의 연금수령 제한기간을 현행 3년(기초노령연금제)에서 5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이 같은 방안을 마련키로 한 것은 기초연금이 현재 월 최고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어날 경우 순전히 연금을 타기 위한 목적으로 재산을 자녀 명의로 돌려놓는 사례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도입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도 당초 정책 목표인 노인빈곤율이 떨어지지 않으면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다.

K씨의 사례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수백억원대 자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도 손자들 용돈을 주겠다며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사람이 지금도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동시에 만 65세가 넘어서도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노인들이 더 많은 연금을 탈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월 소득인정액을 계산할 때 적용하는 월 45만원의 근로소득공제액을 대폭 상향 조정하겠다는 것. 이 경우 가난한 노인들의 소득인정액이 낮아져 소득에 따른 기초연금 차등화가 이뤄지면 더 많은 연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한편 복지부 내에서는 이 밖에 자식 등 부양의무자가 엄청난 재산을 갖고 있을 경우 아예 기초노령연금을 못 받게 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기초노령연금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노인빈곤율을 떨어뜨리겠다는 취지에 맞지 않게 대상자가 선정되고 있다”며 “동거 자녀의 경제력을 기준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부양의무자 재산을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큰 행정비용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방안이다.

재산에 대한 공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도 어렵다. 노인 재산은 대부분 집과 예금이다. 노인들이 평생 살 집 한 채와, 생활자금 2000만원에 대한 공제를 낮추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복지부 사람들 얘기다. 묘안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주헌 기초노령연금 과장은 “신중한 검토와 복지 공무원들의 업무량 등을 감안해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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