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잉브레인 서평 / 조경식 제일기획 상무
뇌과학과 마케팅의 결합이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A. K. 프라딥의 <바잉브레인>을 읽으니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이 그동안 뉴로 마케팅(Neuro Marketing) 서적들이 보여준 아쉬움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뉴로 마케팅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것은 기존 소비자 조사 기법들의 한계를 과학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여겨졌다. 설문조사나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같은 기존 조사 방법들은 손쉽게 소비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은 있었지만, 구조적 특성상 오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행동에 일관성과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답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응답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느냐가 소비자 조사의 중요한 이슈였다.
뉴로 마케팅은 뇌과학을 이용하여 소비자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반응들까지 잡아낼 수 있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니, 그야말로 마케팅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라 할 만했다.
그런데 뉴로 마케팅은 이제 막 연구에 활기를 띠는 분야였기 때문에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분석이나 실질적인 활용 방법까지 기대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정작 마케팅 전문가들이 궁금했던 것은 뇌과학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서 어떻게 ‘실제로’ 브랜드 전략이나 제품 디자인, 포장 등을 바꿀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지만 말이다.
<바잉브레인>은 기존의 뉴로 마케팅 서적과는 달리 이론이나 현상을 나열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설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대신 뉴로 마케팅을 통해 찾아낸 현상이 어떤 사회적 맥락이나 뇌과학적 발견과 관련이 있는지, 뇌과학을 이용하면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등 실무에서 궁금해 할만한 내용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 사례를 들어보자. 베이비 붐 세대는 미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세대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인 그들은 이제 현업에서 은퇴하여 여유 있는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런 베이비 붐 세대를 대상으로 뉴로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소비자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부정적인 성격의 메시지보다 긍정적인 성격의 메시지에 더 호의적으로 반응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호의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만 가지고 이 결과가 마케팅적으로 크게 유용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것이 데이터로서 가치를 갖기 위해선 ‘이유와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베이비 붐 세대는 ‘왜’ 긍정적인 성격의 메시지에 반응하는가?
여기서 <바잉브레인>은 뇌과학적 접근법에 인문학적 통찰을 접목하여 현상에 대한 풍부한 해석을 이끌어 낸다. 책에 따르면 베이비 붐 세대의 긍정적인 태도는 그들이 살아온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들은 미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격변하던 시대를 살았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난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고 정서적으로는 유연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나이가 든 두뇌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감정 조절 능력과 상황 판단 능력을 가지게 됐다. 따라서 젊은 사람들보다 더 긍정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뇌과학적인 측면에서도, 젊은 사람들의 뇌가 긍정적인 자극을 볼 때와 부정적인 자극을 볼 때 모두 반응하는 반면에 나이 든 사람들의 뇌는 긍정적인 자극을 볼 때만 활성화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긍정적인 성격의 커뮤니케이션 메시지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마케팅 전문가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두뇌가 우리 브랜드를 선호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
<바잉브레인> 2부 ‘뇌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는 뉴로 마케팅이 실제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소개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뉴로 마케팅을 당장 실무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수준에서 설명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당신이 포스터에 글자나 그림을 어떻게 배치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하자. 포스터에 내용을 배치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히 취향의 문제 같기도 하다. 과연 이런 문제에도 정답이 있을까?
<바잉브레인>에 따르면 글자와 그림을 함께 배치할 때는 왼쪽에 그림을 놓고 오른쪽에 글자를 놓는 것이 좋다. 뇌가 정보를 받아들일 때, 왼쪽 시야에 있는 정보는 우뇌가 인식하고 오른쪽 시야에 있는 정보는 좌뇌가 인식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뇌는 이미지를 해석하고 좌뇌는 의미를 해석한다고 한다.
이렇게 두뇌의 기능에 따라 정보를 배치하면, 정보 처리 과정이 빨라지고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이 <바잉브레인>이 보여주는 다양한 뇌과학적 접근들은 브랜드·제품·포장·매장·광고·스마트 미디어 등 소비자들이 의식적으로 지각하는 영역 전반에서 유용한 팁을 제공한다.
“하나의 과학과 그 과학이 낳은 기술 그리고 실재하는 현실적 문제들이 합쳐져서 인간의 능력을 혁신하고 확장하는 것은 무척 진귀한 일이다.” 뉴로 마케팅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두뇌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단순한 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기업이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읽어 그것에 맞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잉브레인>은 현상의 해석과 활용을 통해 뉴로 마케팅의 실질적 가능성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을 뉴로 마케팅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기존의 뇌 과학적 접근법에 한계를 느꼈던 사람 모두에게 좋은 지침서로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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