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를 읽는 지혜 필요
아내의 두통 호소에 병원에 가라 되풀이보다 진지한 대화가 때론 '藥'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다. 거란이 침입해 왔으나 서희가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어 오히려 강동6주 땅을 되찾았다. ‘고려의 서희가 거란과 협상에 나섰다. 이때 고려는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내세워 땅을 내놓을 수 없다고 했다. 거란은 이를 인정하고 물러났다. 이로써 고려는 강동6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내용에 따르면 거란의 장수 소손녕은 괜히 고려를 침입했다가 싸워보지도 않고 강동6주를 빼앗기고 물러난 셈이다. 체면이 안 선다. 거란으로 돌아간 소손녕은 황제에게 협상 결과를 어떻게 보고했을까. “황제님, 알고 계셨어요? 제가 고려의 서희라는 신하에게 듣자니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합니다. 고려라는 국호도 고구려에서 따온 거라고 하고요. 아시다시피 강동6주 땅이 지금은 우리 영토지만,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잖아요? 그러니 고구려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것이 맞을 듯하여 제가 돌려주고 왔습니다.” 설마 이렇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제 아무리 인자하고 너그러운 황제라고 할지라도 이런 정신 나간 장수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럼,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어떻게 된 걸까.
모든 협상가는 두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는 ‘요구’라고 번역되는 ‘포지션(position)’이고, 다른 하나는 ‘욕구’라고도 하는 ‘인터레스트(interest)’다. 어떤 사람이 겉으로 요구하는 바는 포지션이요, 그런 요구를 하는 속내는 인터레스트라고 보면 된다.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여름 한낮 시골에 위치한 작은 구멍가게의 문이 열리더니 손님 한 명이 들어오며 외친다. “콜라 한 병 주세요.” 이때 콜라 한 병 달라는 말이 ‘포지션’, 즉 요구다. 그런데 콜라를 달라는 속내는 뭘까. 아마도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어떤 요구를 하는 진짜 이유, 이것이 ‘인터레스트’다.
마침 가게에는 콜라가 떨어진 상태다. 그렇다면 가게 주인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콜라를 달라는 손님의 포지션에 반응해 “콜라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손님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가게를 떠날 것이다. 이와는 달리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인터레스트를 공략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자면 “콜라 대신 시원한 사이다는 어떠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무더위에 지친 손님은 흔쾌히 가게 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람을 움직여서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포지션이 아니라, 속에 감춰져 있는 인터레스트를 파악하고 이를 공략해야 한다.
다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얘기로 돌아가보자. 거란의 왕 성종은 소손녕과 80만 대군을 보내 고려를 공격해왔다. 화친을 요구하는 고려 측에 적장 소손녕은 항복만을 요구할 뿐이었다. 침략의 이유를 묻자, “너희 나라가 백성을 돌보지 않으므로 천벌을 주러 온 것이다”는 이치에 닿지 않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서희는 겉으로 드러난 이런 포지션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당시 중국 대륙의 송나라와 거란, 고려 삼국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세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신흥국가로 일어난 거란과 기존 지배국가인 송나라 간에는 조만간 대륙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가 벌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거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송나라와의 결전을 앞두고 가장 부담스러운 건 무엇일까. 송과 ‘형제의 나라’임을 자처하고 있는 고려다.
전력을 다해 송나라와 싸우는 와중에 고려가 후방에서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이를 간파한 서희는 소손녕에게 거란이 송을 공격할 때 배후를 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거란의 인터레스트를 만족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강동6주를 돌려받고 화친을 맺을 수 있었다.
상대의 포지션이 아니라 인터레스트에 집중해야 한다는 협상의 원리는 대인 관계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회사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부하직원에게 그럴 때는 쉬어야 한다며 휴가만을 권유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부하직원은 비전 없는 직장 생활이나 다른 팀원과의 갈등 때문에 힘겨워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아내에게 아플 땐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내의 두통은 의사가 아니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남편이 고쳐주는 경우도 많다. 이제부터는 상대방의 포지션이 아니라 인터레스트에 관심을 가져보자.
이우창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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