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차도로 밀려난 전동 휠체어…안전장비도 없이 '아찔한' 질주

입력 2013-09-13 17:10   수정 2013-09-14 01:15

법 규정으론 '보행자' 인데 장애물 많아 인도 통행 어려워
노인·중증 장애인 주로 이용…조작 실수로 사고 빈발
밤엔 잘 보이지도 않아…길 한복판서 고장나면 위험천만




#1. 주부 김미선 씨(31)는 지난 4월 서울 K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던 시아버지 박모씨(62)가 서 있던 트럭과 충돌해 얼굴을 크게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차도에서 운행하다 빠른 속도로 옆을 지나가던 차량에 놀라 가속 버튼을 눌렀다. 급출발한 휠체어에서 튕겨져 나간 박씨는 도로 가장자리에 주차해 있던 5트럭에 부딪혀 이가 두 개 손상되는 등의 부상을 입었다.

#2. 뇌병변장애인으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최모씨(45)는 지난 7월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오후 7시께 서울 가양동 복지관을 나와 차도로 진입하는 순간 이를 보지 못한 승용차가 추돌한 것이다. 최씨는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건강보험공단 지원금으로 구입한 전동휠체어도 망가졌다.

전동휠체어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 수단으로 쓰이는 전동휠체어는 도로교통법상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다. 차도 운행이 불법이지만 관련법 미비에다 나쁜 인도 노면 사정 등으로 차도를 이용한 아슬아슬한 운행이 이어지고 있다. 별도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은 전동휠체어가 도심 차도를 계속 질주하면 대형 사고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5년간 600억원 지원했지만…

전동휠체어나 스쿠터는 도로교통법상 ‘자동차’로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간 장애인들이 ‘무면허 운전’을 이유로 벌금을 내는 일이 속출하면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차원에서 2005년 ‘보행자’로 분류됐다. 운전면허 없이도 전동휠체어 운행이 가능토록 한 것이다. 전동휠체어 가격은 200만~500만원으로 다양하다. 속도는 시속 15㎞ 이하로 제한돼 있다.

법 개정 이후 전동휠체어는 급속도로 보급됐다. ‘2011 장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268만여명)의 6.2%인 10만2000여명으로 나타났다.

전동보장구(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 소지자는 2005년 2만2000여명, 2008년 8만1000여명에 이어 계속 증가세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노인들도 전동휠체어를 이동 수단으로 쓰는 경우가 늘고 있어 전체 전동보장구 소유자는 15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장애인들에게 전동보장구 구입비를 지원하는데, 지난해 6600여명에게 94억5000여만원을 지급했다.

전동휠체어 보급 대수가 늘어나면서 사고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서울 소방서에 접수된 전동휠체어 사고만 143건이다. 운전 부주의나 인도 운행 중 발생한 안전사고도 있지만 교통사고도 57건이나 됐다. 김경수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전동휠체어는 시속 15㎞까지 달리는 데다 제동거리가 3.5m로 길어 돌발 상황이 닥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후미등 없어 밤길 달리다 대형 사고

전문가들은 끊이지 않는 사고 원인으로 전동휠체어 운행을 배려하지 않은 국내 도로 설계를 꼽았다. 전동휠체어가 인도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차도로 진입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장애인자립재활센터에서 일하는 이모씨(27)는 지난달 겪은 황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상가건물 신축 공사 현장 앞 인도를 지나다 공사현장 자재가 쌓여 있어 전동휠체어 운행이 불가능했다. 이씨는 공사 현장 인부에게 자재를 치워줄 것을 요청했지만 “차도로 가라”는 핀잔만 들었다. 이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도 “왜 꼭 인도로 가려고 하느냐. 차도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만약 차도로 갔다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동휠체어는 고장이나 배터리 방전으로 휠체어가 멈춰서는 경우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100㎞이 넘는 전동휠체어의 무게 때문에 구조를 빨리 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주로 노인이나 장애인이 사용하다 보니 운전 조작 실수 등이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동휠체어 업체 관계자는 “조작 실수로 멈춰야 하는 상황에서 가속 버튼을 눌러 튕겨져 나가거나 주변 장애물과 부딪히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미흡한 안전장치와 관련 규정 미비도 사고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일선 경찰서 교통조사과 관계자는 “명확한 법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 차도로 다니는 전동휠체어를 봐도 인도로 운행하라고 계도하는 선에 그친다”며 “안전장치가 미비해 차도로 다니다가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량 운전자에게 전동휠체어는 골치덩어리다. 서울 상암동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양모씨(34)는 “전동휠체어에는 야간에 식별이 가능한 불빛이 없어 갑자기 나타나면 당황하게 된다”며 “안전장치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노인들이 차도에서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교통 안전교육·도로 여건 개선 시급

전문가들은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 이용자를 위한 교통안전 교육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시속 25㎞ 이하의 전동운송기구를 구입할 경우 도로교통법상 차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교통안전 교육을 받지 않는다. 광진경찰서 교통과 관계자는 “사고 예방을 위해 장애인도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며 “노인단체 장애인기관 등과 연계해 교통안전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은종군 한국장애인총연맹 정책홍보국장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도로 사정 때문에 차도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전동휠체어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도로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김 교수는 “앞으로 도로를 만들 때 차도와 분리된 자전거·휠체어·보행자 전용 도로를 만들거나 길모퉁이에 경사면을 만든 커브램프 등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병현 용산경찰서 교통과장은 “차로와 보도가 구분되는 곳의 진입 턱을 낮추고 볼라도(차량 진입 방지봉)를 전동휠체어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설치하는 배려가 절실하다”며 “후미등 설치를 의무화해서 먼거리에서도 사람이나 차량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박상익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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