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족산 꾸민 뻔뻔男 "술·황톳길 공통점은 문화 콘텐츠"

입력 2013-09-15 14:45  

여행과 사람들

계족산에 황톳길 조성한 조웅래 더맥키스컴퍼니 회장

"소주는 대중이 찾는 술…수익 대중에게 돌아가야"
6년째 6억원 이상 투자…트레킹길 조성·숲 콘서트 열어
콘텐츠 회사 만드는 게 꿈…테마파크 등 체험 공간 계획

<뻔뻔 : 펀펀·fun fun>



대전 계족산에 무려 50억원을 들여 황톳길을 조성하고 주말마다 ‘뻔뻔(펀펀)클래식’이라는 이름의 숲 속 콘서트를 여는 사람이 있다. 관광공사 사장도 아니고 사회사업가도 아니다. 대전에서 중견 소주회사를 운영하는 조웅래 (주)더맥키스컴퍼니 회장(53)이다. 조 회장은 정보기술(IT)이 붐을 이루던 시기에 기발한 상상 하나로 큰돈을 벌고 그 돈으로 주류회사를 인수했다.

지방의 중견 주류회사 회장으로 여유있게 살면 그만일 텐데 그의 상상에너지와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소주회사를 콘텐츠 회사로 키울 꿈을 꾸고, 가치 있는 일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즐겁게 살기를 원하는 조 회장(53)을 만났다.

“소주 파는 회사가 황톳길을 만든다고 하니 술 팔아서 남긴 수익을 길 위에 뿌린다고 직원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반대했죠. 하지만 저에겐 뚜렷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소주는 대중이 즐겨찾는 술입니다. 그 수익으로 대중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조 회장은 정부 지원금도 없이 대전시민이 즐겨찾는 계족산에 황톳길을 조성했다. 벌써 6년째 매년 6억원이 넘는 돈을 길에 들이부었다. 처음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괴짜 같은 행동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황톳길을 조성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황톳길 조성에 나서자 그들조차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황톳길에 쓰이는 흙은 전북 김제에서 3개월마다 공수해온다. 황톳길만 만들기 아까워 트레킹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문화까지 즐기라고 ‘뻔뻔(펀펀)클래식’이라는 이름의 재밌는 클래식 공연도 만들었다. 게다가 1년에 한 번씩은 축제 기간을 정해 1만명씩 참여하는 걷기대회도 연다. 황톳길 관리도 아예 공유가치팀(CSV팀)을 만들어 전담하도록 했다. 회사 주력 상품인 산소소주 ‘오투린’의 광고비는 줄여도 황톳길 관리비는 줄이지 않았다.

조 회장이 계족산 14.5㎞에 황톳길을 만들게 된 건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계족산에 산책을 갔다가 하이힐을 신고 온 여성에게 운동화를 벗어 주고 맨발로 흙길을 걸은 게 계기였다. 그랬더니 머리는 맑아지고, 다음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단다. ‘다른 사람들도 상쾌함을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에 황톳길을 조성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사람들이 마케팅을 생각할 때 어떻게 하면 지갑을 열 것인지만 고민하지만 마음을 열면 지갑도 스스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죠.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야 해요. 계속 다가가다보면 어느 순간 진정성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의 진정성이 통해서였을까. 지금은 연간 30만명 이상이 황톳길에서 힐링을 하고 돌아간다. 길이 명소가 되자 오투린의 점유율도 40%에서 60%까지 올라갔다. 소주로는 드물게 고액의 광고모델을 쓰지 않고 얻은 성과다. 조 회장의 배려하는 마음이 신뢰가 되고 공감이 돼 돌아온 셈.

조 회장은 1992년 단돈 2000만원을 가지고 ‘700-5425’ 서비스를 시작했다. LG정보통신에서 일하던 중 자동응답시스템(ARS)이 뜰 거란 생각에 사업을 시작한 것. 휴대폰 벨소리 제공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성공을 거뒀고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던 그가 2004년 말에 갑자기 지방 소주회사 선양을 인수했다.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방향을 전향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벨소리나 술이나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결국 타깃은 대중이거든요. 1997년 벤처사업을 할 때 회사 슬로건이 ‘사람과 사람 사이’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소리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지금 이 황톳길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것이고, 핵심 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회장은 술은 공장에서 만들고 안주 거리는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술은 계속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회사로 만들 생각이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갑자기 무슨 콘텐츠 사업이냐고 하겠지만 사실 황톳길도 하나의 문화 콘텐츠입니다. 현재 꿈꾸고 있는 사업은 인체 테마 파크입니다. 재미있는 체험 학습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이미 2011년 사내에 ‘크리에이티브연구소’를 설립해 대전 공장 옆에 4차원(4D) 체험관을 만들었다. 3D 입체 영상부터 의자 움직임 기술 등을 도입하는 데 25억원을 들여 1년도 안 걸려 4D 체험관을 열었다.

“술은 문화 콘텐츠”라고 외치는 조 회장의 엉뚱한 발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난달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 IT 쇼’에 칵테일 전용 술 ‘맥키스’를 들고 참가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전자회사와 벤처기업들 사이에 식음료 업체가 참가한 것은 유래없는 일. 그는 “콜라, 주스 등 다양한 제품과 섞어 먹는 것이 맥키스의 장점”이라며 “최근 IT업계 화두 중 하나인 ‘콘텐츠 융합’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꿈을 꾼다. 많은 사람들과 가치를 공유하는 꿈, 기발한 아이디어를 콘텐츠로 만드는 꿈. 그런 꿈을 꾸기에 그는 바쁘고 늘 행복하다. 언제나 행복한 아이디어 속에 파묻혀 사는 삶, 조 회장이 사는 방식이다.

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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