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부족하다보니 '따라하기'투자 수두룩
이 기사는 09월05일(06:58)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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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 말끔한 외모에 고급 양복을 차려입은 벤처캐피털리스트 A씨는 펀드출자기관이 진행하는 운용사 선정심사에 참가했다. 그는 늘 그렇듯 심사위원들 앞에서 유창한 프레젠테이션 실력을 뽐냈다. 사실 A씨의 회사엔 이번 펀드의 주투자분야인 정보통신(IT), 바이오 쪽 전문가가 거의 없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기업의 재무구조만 뜯어보고 투자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의치 않으면 상환을 요구해 손실을 내지 않으면 된다.
한국 벤처산업육성의 선봉장인 벤처캐피털에 ‘금융’만 있고 ‘사람’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수년간 대규모로 벤처육성 자금을 푼 덕분에 벤처캐피털들의 운용자산은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운용을 전담할 핵심인력 풀(pool)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 특히 산업 및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공계 출신 투자인력들이 부족해, ‘금융’에만 초점이 맞춰진 반쪽짜리 투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벤처시장 10조, 전문인력 692명?...올해 수조원 쏟아지는데 신규인력 적어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2년말 기준 벤처캐피털 업계의 전체 등록인원은 총 1202명이다. 이중 중소기업청이 펀드운용인력으로 인정하는 전문인력은 692명이다. 2011년 전체 인력이 1189명, 전문인력이 646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년 소폭 늘어난 수준이다. 이 기간 벤처캐피털 수는 105개로 동일했다.
반면 국내 벤처캐피털들의 펀드약정총액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 2007년 5조760억원을 기록하며 5조원을 돌파한 뒤, 2010년에는 7조6135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에는 9조4600억원, 2012년에는 9조3491억원을 기록했다. 올 7월에는 9조3585억원으로 10조원 돌파를 목전에 둔 상태다.
벤처펀드 규모는 10조원에 육박하는데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700명 안팎이라는 것은 1인당 평균 운용액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1인당 약 140억~150억원을 운용하는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 수치가 오히려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올해 정부가 신규조성 하는 벤처펀드 규모는 4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업계로 새로 유입되는 전문인력은 거의 없는 상태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벤처투자는 한 건당 (단계별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0억~20억원 안팎인데 운용금액이 커지면, 그만큼 피투자기업의 사후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현재 보다 적어도 2~3배 많은 전문인력이 있어야 투자 및 관리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공계 출신 전문인력 감소...산업전문가 부족 ‘심화’
국내 벤처투자 업계에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한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IT기업, 신소재기업, 바이오기업 등에 투자하려면 해당산업에 대한 상당수준의 이해도가 있어야 하는데 국내 벤처캐피털리스트들 중엔 경영학과를 졸업한 금융전문가들이 많아 기술적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 이런 이유로 기업의 기술력 및 산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하기 보단, 회사의 재무구조 및 투자실패 시 상환방법 등에 초점을 맞춘 리스크 헷지형 투자집행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벤처캐피털리스트(전문인력 692명 대상, 벤처캐피탈협회 자료제공)의 대학교 전공을 살펴보면 사회과학계열(경영학과 등)이 61.1%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어 이공계열 22.2%, 인문계열 10.4%, 법학계열 3.1%, 자연과학계열 2.8% 등의 순이다.
문제는 이공계 출신 전문인력이 전년도 보다 오히려 감소했다는 점이다. 2011년(전문인력 646명 기준)에는 사회과학계열이 49.9%로 절반 정도였다. 이공계열은 33.1%로 3분의 1 정도를 유지했고, 이어 인문계열 9.1%, 자연과학 3.5%, 법학 3.1% 등의 순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벤처캐피털리스트의 70% 이상이 이공계열 출신이며, 이들은 기술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피투자회사 경영진 이상으로 기술력을 이해해야만 컨설팅도 해주고, 파트너로서 사업방향을 함께 의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문성이 없으면 투자에 대한 확신이 없게 되고, 결국 녹색산업, 태양광업체 등과 같이 유행에 따른 투자에만 매몰되기 쉽다”며 “최근 벤처육성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데 이중 일부라도 벤처캐피털 전문가 육성에 투입해 중장기적으로 벤처투자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동혁/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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