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산업 비타민' MLCC…삼성전기, 세계 1위의 꿈

입력 2013-09-16 17:26   수정 2013-09-17 02:03

좁쌀 같은 플라스틱에 저수지처럼 전기 저장
일본이 99% 휩쓴 시장 도전…10년 적자내며 대규모 투자
점유율 24%로 도약




좁쌀 같은 플라스틱 조각이 쏟아져 나온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망 하나에 수십만개가 들어있다. 삼성전기 부산공장(부산시 강서구 녹산공단)에선 손톱 절반 크기부터 잘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양한 플라스틱 조각이 수십 단계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다.

이건 단순한 플라스틱이 아니다.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란 복잡한 이름의 첨단 부품이다. 지헌흠 삼성전기 부산공장 제조팀장은 “대표 제품인 ‘0603’의 경우 가로 0.6㎜, 세로 0.3㎜로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그 속엔 유전체와 전극이 300층 이상 쌓여있어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물로 비교하면 저수지나 댐과 같은 역할이다. 스마트폰이나 가전, 자동차뿐 아니라 무기와 의료기기, 로켓, 로봇까지 전기가 쓰이는 모든 제품에 수백~수천개씩 들어간다. 이 때문에 ‘디지털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MLCC엔 삼성전기의 커다란 꿈이 집약돼 있다. MLCC는 10년 전만 해도 무라타제작소 다이요유덴 등 일본 회사들의 전유물이었다. 1986년 사업에 뛰어든 삼성전기는 2001년까지도 점유율이 3%(업계 8위)에 불과했다.

원자재와 설비를 자체 생산하던 일본 회사들은 삼성전기에 이를 공급하려하지 않았다. 삼성전기는 원자재는 교세라 등 MLCC를 만들지 않는 기업에서 사왔고, 설비는 중고품을 겨우 구했다. 그러다 보니 첨단 제품을 만들기 어려웠다. 무라타 등이 크기와 적층수 등에서 세계 최초 제품을 개발해 2~3년간 비싼 값에 팔고 나면, 그때서야 생산을 시작하게 된 삼성전기로선 저가에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당시 상무였던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이 MLCC를 만드는 칩부품사업팀을 맡은 게 전환점이었다. 최 사장은 세계 최초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돈을 벌기 어렵다고 봤다. ‘3~4년 뒤 세계 최초 제품 개발’이란 목표를 세우고 연구개발에 돌입했다.

또 세계 최초 제품을 생산하려면 일본처럼 자체적으로 원자재와 설비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해 밀어붙였다. 10년 이상 적자를 내 온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하는 모험이었다.

그 뚝심은 결국 성공했다. 2005년 삼성전기는 세계 최초 제품을 3개나 한꺼번에 내놨다. MLCC 매출이 연평균 30%씩 성장하기 시작한 게 바로 그 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날개를 달아줬다. 일본 회사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 삼성전기는 ‘모바일 시대가 오면 더욱 작고 뛰어난 MLCC가 필요할 것’이란 판단하에 증설을 했다. 2009년 점유율 17%로 업계 2위가 됐다.

올 상반기 점유율은 24%로 높아졌다. 삼성전기는 역전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IT 제품에 들어가는 MLCC에 집중해왔지만, 자동차용 시장 개척에 나섰다. 조만간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 납품할 것이라는 귀띔이다. 권영노 삼성전기 전무는 “2017년까지 현재 연 매출 2조원을 4조원으로 두 배 늘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부산=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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