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12월 회의서 추진될 듯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9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에서 출구전략 추진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일부에선 ‘버냉키 반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회의 직전까지 ‘출구전략이 추진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했던 시장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처럼 통화정책에 커다란 변화를 모색할 때는 시장과 경제주체에게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기준을 명확하게 예고해야 한다. Fed도 그런 중요성을 감안해 출구전략 추진 시 ‘날짜 또는 일몰조항 중심’ ‘조건충족 중심’ ‘경제지표 중심’ 등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 번째 기준은 1차 양적완화가 2010년 3월, 2차 양적완화는 2011년 6월에 시한이 되면서 종료됐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기준은 물가 상승률이 2.5%를 넘고 실업률이 6.5%를 밑돌 때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3차 양적완화는 종료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두 기준이 충족된다고 판단할 때 출구전략 추진이 가능하다.
9월 Fed 회의를 통해 조건충족과 경제지표 중심 기준이 재확인됨에 따라 출구전략이 재추진되기 위해서는 물가와 고용지표가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 이 중 물가목표는 수요견인과 비용 면에서 상승 압력이 크게 완화돼 물가 안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출구전략 추진 시기는 ‘실업률이 언제 6.5%를 밑돌게 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간 ‘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도 금융위기 이전 10년간은 비교적 안정적인 음의 관계가 유지됐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양(+)의 관계로 바뀌었다. 이는 Fed가 양적완화 등과 같은 ‘울트라 통화완화 정책’을 통해 위기극복과 경기회복을 했더라도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지 않았음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Fed는 내부적으로 향후 출구전략 추진의 관건이 될 실업률 등 고용지표 개선 여부를 파악하는 데 ‘베버리지 곡선’을 중시한다. 이 곡선은 일반적으로 경기가 호전될 경우 기업의 구인 활동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실업률이 하락하는 점에 착안해 구인율과 실업률 간 음의 관계가 있음을 도식화한 이론이다.
2011년 이후 피터 다이아몬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에 우(右)하향하던 베버리지 곡선이 금융위기 이후에는 우상향해 미국 노동시장에 구조적인 변화가 있다고 잇달아 주장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 기업들이 경기가 회복하더라도 명확하지 않으면 고용을 늘리는 것을 가능한 한 억제하는 것이 주요인이다.
올 하반기 이후의 실업률 개선 추세가 이어진다는 가정 아래 Fed가 출구전략 추진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실업률 6.5%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5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통화정책 추진 후 효과를 보기까지 걸리는 시차가 대략 9~12개월인 점을 감안한다면, 9월 Fed 회의에서 출구전략 추진을 연기했던 결정은 옳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출구전략 추진을 미루기로 한 것은 ‘버냉키 반란’이 아니라 명확한 근거에서 내린 결정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Fed는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시장의 예상을 받아들이는 ‘순응적 선택’을 한다. 재정정책 등 다른 정책과 달리 시차가 긴 통화정책이 의도했던 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소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Fed의 의중을 시장에서 잘못 읽거나 최근처럼 정책 추진 여건이 모호할 때 ‘체크 스윙’ 차원에서 시장의 예상과 달리 ‘역행적 선택’을 한다. 9월 Fed 회의를 앞두고 양적완화에 회의론자인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의 차기 Fed 의장 내정설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출구전략 추진이 앞당겨지지 않겠느냐는 예상까지 나돌았다.
9월 Fed 회의를 계기로 조지 애컬로프 교수가 비대칭 정보를 활용해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은 ‘역행적 선택론’이 부각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이론은 경제활동에 필요한 완전한 정보를 보유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정보 경제학의 한 부류다. 앞으로 잘못된 시장의 예상을 바로잡을 때 ‘체크 스윙’ 수단으로 자주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 하반기 이후 실업률 개선 추세와 통화정책 시차를 감안해 출구전략 재추진 시기를 추정해보면 이르면 올해 12월에 예정된 Fed 회의에서 단행할 가능성이 높게 나온다. 9월 Fed 회의에서 벤 버냉키 의장이 올해 말에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할 뜻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차기 의장이 버냉키 유임으로 결론이 나면 이때 단행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재닛 옐런 등이 임명되면 새로운 임기가 시작되는 내년 2월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또한 실업률 등 미국 경기가 추가적으로 악화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다.
다음달부터 2014회계연도를 앞두고 Fed가 ‘테일 리스크’로 제기한 재정위험 등으로 경기가 악화된다면 이보다 더 미뤄질 수 있다. 재정정책은 경기부양효과가 큰 데다, 출구전략은 경기가 제 궤도에 올라야 가능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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