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9월23일 오후 1시35분
증권시장에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활용한 신종 ‘꺾기’(은행이 기업에 대출해주면서 일정 금액을 강제 예금하도록 하는 행위) 수법이 확인돼 금융당국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BW 꺾기’란 증권사가 상장사의 사모 BW를 인수해주는 대가로 조달자금을 해당 증권사의 파생결합증권(DLS) 등에 가입하도록 한 뒤 담보로 잡는 행태를 뜻한다. 상장사는 BW 발행을 통해 각종 투자금과 운영자금을 마련했다고 발표하지만, 실제로는 담보로 묶여 쓰지도 못하는 ‘무늬만 자금 조달’인 셈이다.
○메리츠증권 ‘BW 꺾기’ 주도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제약업체 코미팜은 지난달 메리츠종금증권을 대상으로 조달한 100억원 규모의 BW 발행자금(연이율 2.0%)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달한 자금으로 매입한 기업은행 채권 100억원어치를 메리츠종금증권에 담보로 내줬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 건설업체 삼부토건이 7월 초 메리츠종금증권을 대상으로 조달한 300억원(BW 발행금리 연 4.95%)도 ‘그림의 떡’이긴 마찬가지다. 삼부토건은 이 돈을 고스란히 메리츠종금증권이 발행한 DLS에 가입했고, 메리츠종금증권은 이를 담보로 잡았다.
코스닥 화장품업체 코스온과 소프트웨어업체 SGA도 BW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못 쓰고 있다. 두 회사는 메리츠종금증권을 대상으로 각각 50억원과 25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한 뒤 이 자금을 전액 메리츠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및 펀드에 넣었다.
증권업계에선 메리츠종금증권 외에 다른 증권사들도 ‘BW 꺾기’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말 분리형 BW 발행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증권사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BW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8월 말까지 국내 증권사들이 상장사 BW에 투자한 금액은 5180억원(73건)에 이른다. 주로 KTB투자증권 한양증권 이트레이드증권 골든브릿지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이 BW를 인수했다.
증권사들이 ‘BW 꺾기’에 나서는 이유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어서다. BW를 사들일 때 받는 인수 수수료와 채권 이자수익, 신주인수권 매각대금, DLS 등 상품 판매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별다른 위험 없이 BW 투자금의 10~15%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익으로 거둘 수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대주주-증권사 ‘모럴해저드’
상장사들이 증권사들의 배만 불려주는 ‘무늬만 자금 조달’을 하는 이유는 대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넘겨주기 위해서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주주의 지분율 확대 또는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기업들이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자금 조달에 나섰다는 얘기다.
실제 조남욱 삼부토건 회장은 투자회사들과 함께 BW 권면총액 240억원에 해당하는 신주인수권을 확보했다. 코미팜 양용진 회장의 아들 양윤곤 씨가 BW 권면총액 33억원에 해당하는 신주인수권을 취득하며 2세 경영의 기반을 갖추게 됐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은 에이스하이텍(100억원) 에어파크(50억원) 파루(100억원) 한국자원투자개발(50억원)의 BW를 인수했는데 각각 신주인수권 전량을 대주주 등에 넘겼다.
한 대형 증권사 IB 임원은 “‘BW 꺾기’는 모럴해저드에 빠진 상장사 대주주와 증권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꼬집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도 “BW 발행 목적이 대주주를 위한 것이 분명하고, 이로 인해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봤다면 배임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는 배임 동조 소지가 있고, 불건전영업에 해당될 수 있다”며 “전수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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