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살리는 유통혁신에 경제민주화 '칼날' 들이대나

입력 2013-09-23 17:21   수정 2013-09-23 23:21

대기업, 도매업 진출 논란

산업부, 골목상권 '상생방안'으로 권장
동반성장위는 '중기적합업종' 규제 검토
도매시장 복잡한 이해관계 맞물려 '혼란'



서울 합정동에서 6년째 슈퍼를 운영 중인 손승룡 사장(49)은 지난해 이마트에브리데이와 상품공급 계약을 맺었다. 걸어서 불과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위기감을 느껴서다. 이마트에브리데이에서 공급받는 생수 라면 등의 납품가는 기존 거래처보다 3~4%가량 쌌다. 순대 즉석식품 등 대리점에 소량 발주가 어려워 팔지 못한 상품들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손 사장은 “이마트에브리데이는 상품 한 개도 배달해준다”며 “가격도 저렴해 대형마트가 동네에 들어선 뒤에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유통 패러다임의 변화

대형 유통업체들이 이처럼 도매업에 진출한 것은 최근 1~2년 사이다. 각종 규제 탓에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출점이 어려워지자 도매업에 눈을 돌린 것.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에서 상품을 직접 구매해 개별 슈퍼에 공급하고 있다. 이 슈퍼를 업계는 상품공급점이라고 부른다. 통상 한 달에 2000만원 이상 발주하면 월 회원비(100만원)를 면제해준다. 이렇게 대형 유통업체에서 상품을 공급받는 ‘상품공급점’은 전국에 500개가 넘는다.

이마트에브리데이 관계자는 “한 슈퍼당 전체 판매 상품의 10~15% 정도를 납품하고 있다”며 “가맹비를 받거나 본사와 수익을 나누지 않기 때문에 본사의 경영 지배를 받는 체인점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유통업체뿐 아니다. CJ프레시웨이, 대상 등 대리점이나 일반 도매상을 통해 자사 제품을 판매해온 식자재 제조업체들도 최근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도매업에 진출했다. 치솟는 물가 탓에 저렴한 식자재에 대한 음식점들의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고추장 간장 두부 등 식자재 제조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성장세가 주춤한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상의 식자재유통업체인 대상베스트코의 정영걸 동반성장추진팀장은 “대기업이 도매시장에 진출하면서 거래 투명화와 품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규제법안 제출

이렇게 되자 전통적으로 골목상권의 도매를 담당해온 대리점과 일반 도매상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법으로 대기업의 골목상권 출점을 막아놨더니 ‘꼼수’로 진출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동반성장위원회에 식자재 도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기획실장은 “대리점이나 일반 도매상들은 제조업체와의 가격 협상력이 대기업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며 “영세 도매업계를 보호하려면 대기업의 진출을 적극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도 이 같은 분위기에 발맞춰 각종 규제 법안을 내놓고 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대형 유통업체들로부터 상품을 공급받는 상품공급점을 규제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상품공급점은 SSM처럼 전통시장 주변 1㎞ 이내 출점 금지, 월 2회 휴무,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개정안은 상품공급점도 법적으로 SSM과 같은 준대규모 점포에 포함해 규제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의원은 “상품공급점 출점은 법의 맹점을 악용한 대기업의 변종 수법”이라며 “소매상권, 중소 도매업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전했다.

○“소비자 혜택도 고려해야”

문제는 도매시장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난감하다는 것이다. 대리점이나 도매상들의 손을 들어주면 대기업으로부터 싼값에 물건을 납품받을 수 있게 된 일반 소매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인 영업점이 가장 취약한 게 도매 물류”라며 “조직화가 안 된 영세한 소매점들이 대기업을 통해 상품을 공급받으면서 얻는 이익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규제의 적절성을 두고도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규제를 할 경우 비교형량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며 “일반 소매점뿐 아니라 소비자가 받는 혜택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생계형에 머물렀던 도매시장이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산업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시장 변화에 따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 상품공급점

이마트에브리데이, 롯데슈퍼 등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일정 금액 이상 상품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개인 슈퍼를 말한다.

통상 전체 상품의 10~15%를 유통업체로부터 납품받는다. 가맹점과 달리 유통업체 본사와 수익을 나누지 않고 경영상 제약도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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