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첨단소재사로
'모태' 모직업 60년 만에 정리…OLED·LCD업체 잇단 인수
에버랜드 '패션 도전'
테마파크·리조트 사업과 시너지…내부거래 비중 축소 효과도
삼성그룹이 계열사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 재편에 나섰다. 패션사업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디스플레이사업 분사 등 전자사업을 구조조정했던 삼성은 이번엔 1954년 모직물 사업으로 출발한 제일모직에서 패션·직물을 떼어내 삼성에버랜드로 옮기는 강수를 뒀다.
비주력사업으로 전락한 패션업을 제일모직에서 분리해 전자소재사업을 강화하고, 대신 사업다변화 기회를 찾던 에버랜드에 패션업을 맡긴 것이다. 에버랜드는 패션업 수혈을 기회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춤으로써 외부의 따가운 시선도 피하고, 자산가치에 비해 낮았던 수익성도 높인다는 전략이다.
○소재로 크려는 제일모직
제일모직 패션사업 분리는 몇년 전부터 구상돼왔다. 패션·직물업은 창업기반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작년 말 기준으로 매출의 30%에 불과한 비핵심 사업이 됐다. 영업이익률은 2%대로 주력사업이 된 전자소재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2분기 패스트패션 부문의 부진으로 적자를 내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제일모직 1대주주(지분율 9.88%)인 국민연금이 몇년 전부터 패션사업 매각·분리 등 구조조정을 요구해왔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은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여 작년부터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성장세가 꺾인 패션사업을 사려는 곳을 외부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에버랜드가 인수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에버랜드는 △리조트 △빌딩관리 △급식 등 여러 사업을 벌여왔지만, 수익성이 낮은데다 핵심이라 부를만한 사업이 없어 새 성장동력을 찾고 있었다.
이에 삼성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인 윤주화 사장을 패션부문 대표이사로 발령내 매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올 6월엔 패스트패션브랜드 ‘에잇세컨즈’를 담당해온 제일모직 자회사 개미플러스를 제일모직에 합병시켰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8월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해 인수자금을 확보했다. 인수가격은 1조500억원으로 총자산(1조8985억원)에서 총부채(7377억원)을 뺀 수준으로 결정됐다.
○패션사업으로 크겠다, 에버랜드의 도전
제일모직은 패션사업 매각으로 확보한 돈을 전자소재사업에 투자, 글로벌 소재기업으로 발전한다는 전략이다. 제일모직은 전자소재 경쟁력 확보를 위해 2010년 액정표시장치(LCD)용 편광필름 업체인 에이스디지텍을 인수했으며 지난달엔 유기발광다이오드(OELD) 관련 핵심기술을 가진 독일 노바엘이디를 인수하기도 했다. 박종우 제일모직 소재사업총괄 사장은 “공격적 투자를 통해 차세대 소재의 연구개발 및 생산기술의 시너지를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증권가는 소재산업에 집중하겠다는 제일모직의 결정을 반기고 있다. 김양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영업이익률이 2%대로 낮았던 패션 부문을 정리함으로써 전자재료 분야에 집중할 것”이라며 “추가 인수합병(M&A) 등 과감한 투자로 소재사업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조우형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1조500억원이란 양도금액은 패션사업 가치에 비해 잘 받은 것”이라며 “당장은 패션 관련 매출이 빠지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제일모직의 실적은 개선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버랜드는 테마파크, 골프장 운영 등에서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패션사업을 아웃도어·스포츠·패스트 패션 등으로 키워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패션업을 중장기 성장의 한 축으로 육성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인수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는 부수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에버랜드의 내부거래 비중은 46.4%에 달한다. 작년 매출액 3조원을 기준으로 패션사업 매출 1조8000억원(내부거래 비율 3%)을 더하면 내부거래 비율은 30% 수준으로 낮아지게 된다. 삼성 관계자는 “그동안 에버랜드는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따가운 외부 시선 탓에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진출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며 “패션사업 인수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고 수익가치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버랜드는 지난해부터 삼성중공업 건설사업부 인력을 대대적으로 수혈해 건축사업도 육성하고 있다.
김현석/윤정현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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