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 일임업 놓고 은행-증권사 '충돌'

입력 2013-09-24 17:22   수정 2013-09-25 03:42

은행 "PB고객 위해 진출 불가피"
증권사 "과당경쟁 심화" 강력 반발




은행권이 고객으로부터 투자판단을 위임받아 돈을 굴려주는 일임업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과당 경쟁이 심화돼 수익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새 수익원 찾기에 골몰하는 금융투자업계와 은행권이 연간 400조원 규모로 커진 일임업 시장을 놓고 정면으로 맞붙는 모양새다.

○은행권 “PB 서비스 위해 꼭 필요”

은행들은 프라이빗뱅킹(PB) 고객의 편의를 위해 투자일임업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대형 은행 관계자는 “거액 자산가들의 자금을 관리하는 PB부문에서 주식 등 투자상품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일임업을 할 수 없다 보니 거래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며 “금융업권 간 장벽을 허무는 글로벌 추세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현재 고객에게 투자 정보에 대한 자문만 해줄 수 있고, 고객 자산을 위탁받아 ‘투자’해야 할 경우 증권사 등에 맡겨왔다.

금융당국도 은행권의 건의를 받아들여 금융업권 간 일임업 규제를 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일임업 진출을 강력히 희망하는 것은 새 수익원을 시급히 찾아야 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 간 차이)이 줄고 있어 수수료 수입을 확대해야 하는 처지다.

투자일임업 시장은 매년 20% 이상 커지고 있다. 2011년 296조원 규모이던 일임업은 작년 말 360조원으로 확대됐고, 올해 말엔 400조원을 넘어설 게 확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 300여개 금융투자회사의 일임업 수수료 수입은 감소세다. 경쟁이 심화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2011년 6191억원이던 전체 일임보수는 작년 말 5056억원으로 18.3% 줄었다.

○증권사들 “남 영역 왜 넘보나”

은행들의 일임업 진출에 가장 날선 반응을 보이는 곳은 증권사들이다. 자산운용사들은 개인투자자가 아닌 기관이나 법인 자금을 위탁받기 때문에 전체 자산 대비 0.1% 안팎의 낮은 일임 수수료만 챙길 수 있다. 반면 증권사들은 ‘랩어카운트’란 일임형 상품을 판매하면서 이보다 3~4배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국내 62개 증권사가 작년 한 해 동안 랩어카운트로 거둔 수수료 수입은 총 2625억원이다. 작년 증권업계 전체 순이익(1조2408억원) 대비 20%를 넘는 규모다.

한 증권사 임원은 “주식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역대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며 “이미 경쟁이 치열한 일임업 시장마저 자본력과 인지도를 갖춘 은행에 문을 열어줄 경우 증권업계는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은행들이 하나같이 증권사나 운용사를 자회사 형태로 갖고 있는데 굳이 일임업에 나서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일임업은 고위험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증권업의 본질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자상품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은행 직원들이 고위험 펀드를 안전상품으로 판매하거나 꺾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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