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왜?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게 '혁신'…미래 위해 '옛 성공 방식'도 버린다

입력 2013-09-24 17:41   수정 2013-09-24 22:55

CEO 오피스 - '마이웨이' 리더십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창의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은 대게 유별난 것을 찾아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할부금융업을 하는 현대캐피탈의 미국법인(현대캐피탈아메리카)이 지난해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은 약 2500억원이다. 국내 11개 은행이 해외영업점에서 같은 기간 올린 순이익이 총 68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돋보이는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 미국법인의 순이익은 올해 처음으로 국내법인 순이익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침체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돼 해외영업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다른 금융회사들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성공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물론 현대·기아자동차라는 캡티브 마켓(계열사 간 내부 시장)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미국 같은 선진 금융시장에서 현대캐피탈의 금융 서비스가 먹히고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2009년의 경우 미국에서 현대·기아차를 구매한 사람의 17%만 현대캐피탈을 이용했으나 이 비율이 올 들어 59%로 치솟았다. 남다른 급성장에는 ‘혁신 매니아’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53)의 창의적인 기업 경영이 자리잡고 있다.

한 해 150일을 해외서 보내는 CEO

현대캐피탈의 미국시장 성공에는 합작사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역할이 컸다. 정 사장은 두 회사의 관계를 신뢰로 다져 선진금융기법을 전수받았다. 합작 당시 ‘조인트 벤처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말리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판단으로 합작에 심혈을 기울여 오늘날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조인트 벤처 초기 시절 일이다. 당시 현대캐피탈의 한 임원이 실수로 GE가 파견한 사람에게만 업무 보고를 하지 않았다. 이를 먼저 알게 된 정 사장은 그 임원이 맡고 있는 부서의 복리후생비 지급을 한 달간 중지했다.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지만 이면에는 파트너와의 신뢰가 생명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된 GE와의 신뢰는 더 깊어졌다.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GE와의 교류는 선진자금 조달 기법과 위험관리 방법 등을 터득하는 계기가 됐다. GE의 권유로 2005년 국내 금융사 최초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대출 심사기준에 적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럽 진출에 욕심을 내던 정 사장에게 해외 파트너는 GE만으론 부족했다. GE가 유럽시장에서는 약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 사장은 유럽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를 공략했다. 2010년 전략적 제휴를 맺은 뒤 독일에 합작사(현대캐피탈독일)를 설립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금융의 본고장 영국에도 산탄데르와의 합작사(현대캐피탈영국)를 세웠다. 현대캐피탈영국은 설립 1년 만인 지난달 자산 1조원을 돌파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 1년에 다섯 달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혁신을 지속해온 결과였다.

현대카드, 과거의 성공 방정식 버리다

정 사장은 사실 현대카드 사장으로 더 유명하다. 2003년 시장점유율 1.8%의 업계 꼴찌 회사를 10년 만에 2위권(2012년 점유율 14.5%)까지 끌어올리는 신화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현대카드의 성공 역시 혁신과 창의성이 밑거름이 됐다. 업계 최초 선(先)포인트 제도 도입, 국내 최초 미니카드와 투명카드 출시, 초우량고객(VVIP)을 위한 블랙카드시장 개척 등에서 잘 드러난다. 그 덕분에 현대카드는 ‘가장 혁신적인 회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정 사장은 최근 다시 한번 변신을 선택했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골라 쓰는 각종 알파벳 카드로 외형을 확장하는 과거 성공 전략을 과감히 버렸다. 달라진 신용카드시장 환경에 맞춰 이제 ‘내실 성장’을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가 미래 10년의 성장을 위해 새롭게 꺼낸 카드는 ‘단순화’(→현대카드가 10년 성장을 위해 새롭게 꺼낸 카드)다. 22개에 이르던 알파벳카드 종류는 7개(챕터2)로 줄였다. 혜택도 보너스 적립과 캐시백, 딱 두 가지로 통일했다. 챕터2 카드는 출시 50일 만인 지난달 하순 발급 수 30만장을 돌파했다.

보험시장에서도 혁신으로 승부수

혁신 경영은 보험업권에도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설립한 현대라이프가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그는 현대라이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정 사장이 포화 상태라고 평가받는 보험업에 뛰어든 건 정체된 시장이기에 오히려 차별화된 상품으로 승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금까지의 보험 상품은 너무 어렵게 설계돼 가입자들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대라이프가 연초 선보인 ‘제로보험’은 보장기간 동안 보험료가 오르지 않고, 보험 내용과 지급 조건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만든 게 특징이다. 이 상품은 출시 5개월 만에 5만건 넘게 판매됐다.

“고객만족의 본질을 끊임없이 고민하라”

정 사장의 창의적인 생각은 상담원에게 성희롱이나 욕을 하는 고객의 전화를 차단하라고 한 지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서비스업에서는 통상 무조건적인 친절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정 사장은 반대로 생각했다. 무리한 요구에 일일이 응대하지 말고 그 시간에 가치 있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또 상담원의 스트레스를 줄여야 전체 고객에 대한 서비스 질이 높아질 것이란 판단이다. 지난해 초 이 같은 방침이 시작되자 2011년 13.3%였던 상담원 이직률이 작년에는 6.5%로 급감했다.

정 사장의 혁신 아이디어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최근 남긴 그의 트윗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창의적이지 않다고 하는 경우들은 대게 유별난 것을 찾아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것은 별난 재능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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