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보편적 복지 항목 모두 재검토해야

입력 2013-09-24 17:56   수정 2013-09-25 00:02

"기초연금 축소는 불가피한 선택
감당 못할 복지공약 강행보다
지속가능한 복지 기틀 정립해야"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glcho@keri.org



정부는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지급하려던 기초연금을 소득하위 70~80% 노인에게 소득과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방향으로 수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을 직시한 올바른 선택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총 공약비용 134조5000억원 중에서 복지와 관련된 비용이 73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예산절감 및 세출구조조정과 세입확충을 통해 필요재원을 조달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시작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복지재원 규모가 과소 추정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는 일반 정부 재정 외로 운용된다는 이유에서 건강보험기금, 국민주택기금 등을 통한 지출과 민간기업이나 공기업 등이 부담하는 복지비용을 제외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런 간접비용을 모두 포함할 경우 필요한 재원은 157조원에 달해 정부가 예상하는 복지재원에 비해 무려 83조원이나 많다. 복지정책에 대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복지범위와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잘못된 복지정책으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복지정책을 수정한 외국사례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성공한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스웨덴도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초연금을 1990년대에 노인 45%에게만 지급하는 선별적 기초연금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경기침체와 인구 고령화로 재정이 연금지급액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재정위기에 직면한 남유럽과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일본도 정권획득을 위한 인기영합적인 복지공약으로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복지정책을 전면 재정립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시행 초기에 기초연금을 재검토하고 축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차제에 기초연금뿐만 아니라 무상급식, 무상보육, 고교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에 대한 수정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복지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그동안 ‘무상’이라는 정치적 구호 때문에 복지가 공짜라는 인식이 만연했다.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정치논리가 국민들의 표심을 자극하면서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 보편적 복지가 선거 때마다 경쟁적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재정파탄을 우려한 지자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무상복지가 공짜가 아니라는 인식변화가 확대되면서 보편적 복지를 수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국민의 인식변화뿐만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보편적 복지가 소득재분배와 빈곤율 해소에 큰 도움이 안 되면서 성장과 고용에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정책은 선별적 복지정책보다 훨씬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하지만 소득재분배 개선효과는 선별적 복지보다 크게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무상보육,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의 혜택이 저소득층보다는 중상위계층에 더 많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보편적 복지는 일반조세로 재원이 조달되기 때문에 과잉수요를 유발하고, 복지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를 지양하고 저소득층 지원, 노인빈곤 해소, 근로연령대 빈곤해소 등 보다 시급한 분야에 재원을 집중 투입하는 방향으로 복지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집권기간에 복지공약을 준수하고 신뢰받는 정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지사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복지정책을 제대로 수립해 놓는 것도 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이다. 저성장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세입기반이 약화되는 가운데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복지비용은 이미 우리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성장이 둔화될수록 복지에 대한 수요는 커지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우리 경제 수준에 맞는 복지수준과 바람직한 복지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이다. 5년이라는 단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30년, 5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된다.

조경엽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glcho@keri.or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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