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스마트그리드
유럽발 재정위기에 휘청
선진국 대신 신흥시장 개척
알토란 자회사 팔아 재무개선
코스닥 상장사 누리텔레콤의 조송만 사장(54)은 지난 3월 임원회의에서 “올해 흑자를 내지 못하면 사장직을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3년 연속 적자를 낸 것을 올해는 바꿔놓겠다는 각오였다. 흑자전환을 이뤄내지 못하면 자신부터 책임지겠다는 얘기다.
이런 배수진이 통한 것일까. 누리텔레콤이 지난 상반기 소폭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 말에는 대규모 프로젝트 발주가 예정돼 있어 연간 흑자전환 가능성이 크다. 조 사장은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업황이 살아나고 있고 자회사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작업도 마무리됐다”며 “적자는 지난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재정위기 직격탄
조 사장이 1984년 대우통신을 박차고 나와 세운 누리텔레콤은 창업 16년 만인 2009년 매출 5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010년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자 이 회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각국 정부가 전력망 개선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축소하면서 매출이 급격히 줄었다. 이 회사 매출은 2010년 467억원(영업손실 1억7000만원), 2011년 371억원(영업손실 4억7000만원)으로 줄어들더니 지난해에는 264억원(영업손실 43억원)으로 급감했다.
조 사장은 “스마트그리드 유럽 시장이 위축되면서 원격검침기(AMI)를 생산하는 누리텔레콤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원격검침기는 전력 사용량을 측정해 공급자와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스마트 그리드 핵심 부품이다.
○틈새시장 개척 주력
누리텔레콤은 틈새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이 아닌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개척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 6월 경쟁사들을 제치고 가나전력회사(ECG)가 발주한 33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따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현지 10만가구에 전기 원격검침기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조 사장은 “세계 스마트 그리드 시장이 올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며 “가나 사업의 불씨를 살려 노르웨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진행 중인 국제입찰도 따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한국전력이 3년 전부터 추진해 온 가정용 원격검침기 시스템 도입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0년까지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2200만 가정에 원격검침기를 보급하는 사업으로 10월 말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조 사장은 “누리텔레콤이 그간 보급한 상업용 원격검침기는 총 78만 호로 국내 업계 최대 규모”라며 “3년 전 개발한 가정용 원격검침기가 곧 빛을 볼 것”이라고 자신했다.
○“제2 창업하는 마음”
누리텔레콤은 지난 상반기 매출 135억원에 영업이익 15억원을 기록했다. 적자 행진을 끊은 셈이다. 여기에다 자회사 넥스지를 한솔그룹에 235억원에 최근 매각했다. 이 회사는 조 사장이 2004년 사들여 매출을 3배(2004년 60억원→지난해 186억원)로 키우고 상장까지 시킨 ‘알토란’ 같은 회사였다. 매각 자금의 일부는 차입금을 갚아 재무구조를 개선했고 나머지는 설비투자 및 운전자금으로 쓸 계획이다.
조 사장은 “제2 창업을 하는 마음으로 스마트 그리드 시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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