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잡호핑족

입력 2013-09-25 18:03   수정 2013-09-26 00:46

대기업만큼 근무환경이 좋진 않지만
中企는 더 큰 성공 향한 무대일수도

이은정 한국맥널티 대표·여성벤처기업협회장 eunjlee@mcnulty.co.kr



최근 회사 인사담당자를 나무랐던 일이 있다. 경력사원 채용과 관련해 보내준 이력서 때문이었다. 30대 초반 젊은이의 이력서에는 대학 졸업 후 5년간 무려 7곳의 회사를 전전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평균 재직기간은 6개월. 정확한 이직 사유를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오간 화려한 이력서였다.

자신의 경력을 쌓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단기간에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을 ‘잡호핑(Job-Hopping)족’이라 부른다. 성취욕구와 도전정신이 강하고, 안정보다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일부 잡호핑족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방향성과 계획 없이 조직에 대한 불만, 또는 부적응으로 이직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는 철새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불안한 경력을 쌓아가는 젊은 직원이 많다. 물론 중소기업은 대기업만큼 근무환경이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회사 내 조직과 시스템도 체계적이지 않다.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젊은 직원들은 사소한 이유에도 이직의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대기업에 비해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진취적인 젊은이에게는 대기업에서 가질 수 없는 성공의 기회가 열려 있다. 이들에게 열악한 현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토양이다. 미국 시애틀의 작은 커피 소매점 스타벅스에서 일하던 마케팅 매니저는 오늘날 세계 최대 커피 전문점의 회장이 됐다. 자전거 가게 점원이었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마쓰시타 전기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들에게 커피 가게, 자전거 가게는 거대 기업으로 커가는 꿈의 무대이자, 무한한 기회의 공간이었다. 만약 그들이 조금 더 좋은 조건의 회사를 찾아 이직을 거듭했다면 오늘의 스타벅스와 마쓰시다는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자기 역량을 바탕으로 보다 좋은 기회를 찾는 잡호핑족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선순환을 그리며 자기역량을 개발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문제는 자기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즉흥적이고 가벼운 이유로 이직을 반복하는 젊은 직장인들이다.

기업은 그렇게 복잡한 경력을 경험과 노하우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쌓일수록 손해가 되는 경력인 셈이다. 한 CEO가 젊은 직장인들에게 물었다. 왜 일하는가? 그리고 스스로 답을 주었다. “내 일에 애정을 쏟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대신해주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우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의 얘기다.

이은정 < 한국맥널티 대표·여성벤처기업협회장 eunjlee@mcnulty.co.k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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