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의 가장 큰 미덕이자 여타 뮤지컬과 구분되는 요소는 무용이다. 전체적으로 서구 뮤지컬의 틀과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일반 뮤지컬과는 차별되는 수준 높은 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극은 명성황후의 삶을 ‘명성황후가 을미사변에서 살해되지 않았다’는 생존설에 맞춰 재조명한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과 허구를 가미한 ‘팩션’물이다. 춤은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다.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 을미사변 등 역사적 사건을 군무로 역동적으로 형상화하고, 명성황후의 정신적 갈등과 고뇌를 절절하게 표현한다.
서울예술단이 이 작품을 굳이 뮤지컬이 아니라 ‘음악 무용 연극이 혼합된 종합무대예술’인 가무극으로 부르는 것도 공연에 녹아 있는 무용의 요소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대규모 세트 없이 무대 뒷면과 양 옆면에 영상을 입혀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배경을 만들어내는 무대 디자인과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를 강조한 민천홍의 의상도 춤의 완성도를 높인다. 극적 구성력과 대사의 문학성, 주요 배역들의 연기 등 연극적 요소도 대체로 뛰어나다.
하지만 이 공연은 종합무대예술로 평가하기에는 중대한 결격 사유를 안고 있다. 공연은 행위예술이다. 이 공연에는 음악의 본질인 연주 행위가 빠져 있다. 대부분의 반주뿐 아니라 자주 나오는 합창곡(코러스) 모두가 ‘녹음된 음악’(MR)의 재생이다. 주요 배역의 가창과 일부 가창에 흐르는 피아노 반주, 굿판 장면의 타악 연주만이 ‘실연(實演)’이다. 공연에서 실연과 MR의 ‘불균질’은 청각적인 불편함을 유발한다. 때때로 너무 크게 재생되는 합창곡과 오케스트라 반주는 듣기 괴로울 뿐 아니라 무대 퍼포먼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이 공연장에서 지난 7월 공연된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오페라와 발레, 뮤지컬 등 종합무대예술 공연에서 커튼콜의 즐거움 중 하나는 무대 숨은 주역인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이번 무대 커튼콜에는 2막 굿판 장면에서 귀를 즐겁게 해주며 공연 중 유일하게 ‘종합무대예술’을 완성시킨 타악 연주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 국내 공연계에서 연주 행위와 연주자들을 무시하게 된 걸까. 공연장에서까지 재생음을 들어야 하는 관객으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연은 오는 29일까지, 4만~8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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