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의류 등을 수출하고 수출대금을 사업자금으로 세관에 거짓 신고하는 수법으로 1조7000여억원 상당의 엔화를 몰래 들여온 운송업체 대표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무역 알선업자 변모씨(44)를 구속했다고 26일 발표했다. 변씨는 지난해 의류와 액세서리 수출대금이라고 속여 370억원 상당의 엔화를 국내로 몰래 들여와 7억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경찰은 아울러 변씨에게 화물 운송을 맡긴 수출업체 대표 박모씨(49), 운반책 권모씨(57), 일본 현지 브로커 유모씨(44) 등 4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변씨는 물품을 보낸 뒤 대금을 받을 때 일명 ‘하꼬비(はこび·운송)’로 불리는 개인 운반책을 일본에 보내 한 명이 하루 최고 26억원 상당의 엔화를 밀반입하게 하는 등 2007년부터 최근까지 1조7500여억원에 해당하는 엔화를 들여온 것으로 조사됐다. 동원된 운반책만 37명이었다. 변씨 등은 수출업체→화물운송업체→개인운반책→해외 브로커→해외 수입업체로 이어지는 은밀한 조직을 통해 대규모로 엔화를 밀반입, 관련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등을 포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권씨 등에게 화물 운송을 맡긴 의류 제조업체도 무더기로 적발, 임모씨(45) 등 20명을 세무당국에 통보했다.
이들은 국내로 현금을 들여올 때 수출입 거래가 아닌 단순 자본 거래로 신고하면 세금이 부과되지 않고 사후 조사도 없다는 점을 노려 수출대금을 반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이 고액 현금을 허위 신고로 들여왔는데도 이를 검증하고 관련 세금을 추징할 시스템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법령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은 외화 반입 건수가 방대해 모든 반입 내역을 조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어떤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걸러내는 시스템이 아니라 정보와 사람의 눈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법망을 피해가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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