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4> 선택의 역설을 막아주는 직업상담사

입력 2013-09-27 14:11   수정 2013-10-01 15:44


논술도 경제공부도 생글이 ‘일등 도우미’전통적 경제학에서 인간은 보다 다양한 선택권이 주어지면 그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가져다 줄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져 더 큰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비합리성에 주목한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전통적인 경제학적 관점과는 전혀 배치되는 이론을 내놓는다.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 바로 그것이다. 선택의 역설은 선택권이 많아지면 오히려 최종 선택한 결정이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
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이 주어질 경우 오히려 판단력이 흔들려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고, 결국 소수의 선택권만을 가졌을 때보다 더 안 좋은 선택을 하거나 심지어 결정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빈번히 목격되는 현상이다.

‘선택의 심리학(The Paradox of Choice)’의 저자 배리 슈워츠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조사를 수행한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동네 식품 가게에서 잼을 시식한 뒤 잼을 구매한 고객에게 1달러 할인 쿠폰을 증정
하는 실험을 했다. 처음에 6개의 잼만을 진열하고 잼을 시식하게 한 후 사람들의 잼 구매비율은 30%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잼의 숫자를 24개로 늘려 전시했더니 잼을 구매한 사람들의 비율이 3% 수준으로 급감했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 결과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인간의 소비자 행태와 마케팅 관점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선택권이 부여된 많은 소비자들이 되레 비합리적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제시한다. 또 마케팅 관점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권을 주거나 광고를 보여줄 경우 오히려 소비자들은 선택을 주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선택 제한이 되레 효율적

선택의 역설을 인식한 많은 기업들은 소비자 선택의 폭을 줄여주거나 일정 방향으로 유도함으로써 구매를 주저하지 않도록 이끌고 있다. 많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MD추천 상품 코너 등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쇼핑몰 메인 페이지에 많은 상품을 보여주기 위해 공간을 잘게 쪼개기보다는 각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소수 상품을 비중 있게 제시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상품 구매와 관련해 인위적으로 선택의 폭을 제한함으로써 선택의 역설에 대응할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를 이렇게 해결할 수는 없다. 직업의 선택 문제가 대표적이다. 직업의 선택이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인데 이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형태로 선택의 역설을 막으려는
시도는 적합한 해법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해법이 직업상담사다. 직업상담사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직업상담원이 수행하는 업무는 상담업무, 직업소개업무, 직업 관련 검사실시 및 해석업무, 직업지도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업무 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직업상담사란 말 그대로 직업을 상담해 주는 전문가를 말한다. 하지만 직업상담사의 업무가 단순히 구직자들에게 어떤 직업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 구직자의 적성과 흥미를 발굴하고 이에 부합하는 취업 후의 경력 관리자 역할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직업상담사의 역할인 것이다.

2만여개의 다양한 직업

이런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이 필요하고 또 주목받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직업의 수가 급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간한 2011년도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직업 수는 1만1655개에 이른다고 한다. 비공식적인 직업까지 합할 경우 국내에 존재하는 직업 수는 2만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1969년 경제기획원, 과학기술처 등이 편찬한 ‘직업사전’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대표 직업은 3260여개에 불과했다. 1969년 3000여개의 직업에서 불과 40년 만에 4배에 가
까운 신종직업이 더 생겨났으며, 이 수치는 하루에 한 개꼴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셈이다.

이처럼 다양한 직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소년이나 구직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직업의 종류란 극히 제한적이다. 최근 한 연구기관에서 10대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희망 직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등장한 희망 직업의 수는 고작 102개에 그쳤다고 한다. 이런 설문 결과는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어떤 직업이 있는지, 자신의 적성에 부합하는 직업은 무엇이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직업상담사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직업상담사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많은 직업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많은 직업이 소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앞으로 학생들이 갖게 될 직업의 거의 대부분은 미래에 새로 생겨날 직업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06년 포브스는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질 직업으로 지금은 흔한 직업 중 하나인 광부, 건설노동자, 전투기 조종사 등을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을 상담해 주는 전문가인 직업상담사의 업무가 단순히 직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직업에서 요구하는 자질과 특성이 무엇인지 제시해주고, 해당 직업의 향후 전망 등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직업상담사 사회 역할 커져

직업상담사가 수행하는 광범위하고 변화무쌍한 직업의 세계 속에서 구직자들이 선택의 역설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은, 이제 어엿한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매김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책무를 부여받은 전문분야라 할 것이다. 실제로도 최근 많은 지자체에서 직업상담사를 해당 지역의 주민센터에 배치하는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중고령 실업자를 위한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취업 상담 프로그램 등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이 분야에 다양한 직업상담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다양한 고용관련 전문기관은 직업상담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또한 고령화 등으로 재취업의 보편화, 중고령 실업자 대두 등의 현상이 예상되면서 직업상담사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이 탄생한 가장 근원적인 힘은 수많은 직업의 대두와 소멸로 인한 선택의 역설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 직업상담사= 말 그대로 직업을 상담해 주는 전문가로 직업상담사 자격증은 1급과 2급 자격으로 나뉜다. 2급 자격증의 경우 누구나 응시가 가능하다. 직업상담사 자격증 취득자는 공무원 공채 선발 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으며, 취업난 속에 그 수요가 꾸준히 늘 것으로 기대된다.

▨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 선택의 역설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이 주어질 경우 오히려 판단력이 흔들려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고, 결국 소수의 선택권을 가졌을 때보다 더 안 좋은 선택을 하거나 심지어 결정 자체를 포기하기도 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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