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강점으로 대부분 오랜 전통부터 내세운다. 역사가 18~19세기부터 시작한 브랜드가 수없이 많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역사가 짧다고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없는 건 아니다. 2001년 탄생한 스위스 시계 브랜드 ‘리처드밀’이 이를 증명한다.
리처드밀은 독특한 소재에 ‘억’ 소리 나는 가격으로 유명하다. 딱 보면 누구나 ‘정말 특이하네’라고 생각할 만한 시계가 나온다. 첨단 소재를 활용하고 자동차, 건축, 항공산업 등에서 영감을 얻은 초현대적 디자인이 특징.
창업자 리처드 밀 회장을 한국 언론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밀 회장은 “올 크리스마스에 서울 신라호텔에 매장을 열고 한국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많은 한국인에게 최고급 명품의 아름다움과 열정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모브쌩’ 시계부문 회장을 지낸 그는 50세 때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독립했다. 리처드밀은 2001년 첫 제품으로 딱 한 가지 모델을 내놨다. 20만유로(약 2억9000만원) 가격표가 붙은 ‘RM 001 투르비용’이다. 포뮬러원(F1) 경주용 자동차를 닮은 이 시계의 특성은 지금도 리처드밀의 DNA와 같다. “내가 원했던 ‘꿈의 시계’를 내놓고 싶었다. 사실 갓 탄생한 브랜드로선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선주문이 수백건 몰리면서 몇주 만에 동이 났고, 성공적으로 둥지를 틀었다고 확신하게 됐다.”
밀 회장은 “지금까지 50여개 모델을 내놨지만 타협하지 않는 시계 제작의 혁명을 추구한다는 정체성은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짧은 역사에도 최고급 명품시계로 자리잡은 비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원했고, 나는 거기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어 선택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경주용 자동차는 고속으로 달리기 위해 만든 것이듯 우리 시계는 기능에 충실합니다. 불필요한 건 표시하지 않습니다. 형태라는 건 기능이 낳는 겁니다. 미적으로만 접근해 거기에 기능을 끼워넣어선 안 되죠.”
리처드밀은 테니스선수 라파엘 나달, 육상선수 요한 블레이크, 축구선수 로베르토 만치니, 배우 내털리 포트먼·량쯔충(楊紫瓊)·청룽(成龍) 등 유명인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단순한 ‘스타 마케팅’이 아니라 기능이 뛰어한 시계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나달과 손잡고 만든 ‘RM 027’이 좋은 예다. 가볍게 만들기 위해 티타늄, 알루미늄, 리듐 등의 신소재를 사용했고 격렬한 운동에도 깨지지 않도록 견고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나달은 2010년 이 시계를 차고 세계 3대 국제 테니스 대회에 출전해 모두 우승을 거머쥐었다.
리처드밀은 시계 하나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넘나드는 초고가 브랜드다. 너무 비싸지 않으냐고 묻자 밀 회장은 “우리 제품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리처드밀은 타협 없는 완벽함을 추구한다. 유명 공급업체에서 찍어내는 부품을 그냥 가져다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린 스크류처럼 굉장히 작고 미세한 부품도 다 직접 만든다.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시간, 돈, 노력, 의지를 감안하면 비싼 게 아니다.”
현재 리처드밀의 연간 생산량은 3000개 안팎. 밀 회장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해마다 몇백개씩 늘려갈 계획이지만 극단적 확장은 하지 않겠다”며 “아무리 늘려도 연간 5000개는 절대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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