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 달콤한 '유혹'

입력 2013-09-27 17:19   수정 2013-09-28 03:33

커버스토리

무담보 급전 융통…돌려막다 '뒷탈'



“까다로운 은행 대출 대신 기업어음(CP)으로 연명하는 부실회사가 많아져 경제 전반의 위험이 커졌습니다.”(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분석팀장)

CP가 한국 경제의 안전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떠올랐다. 웅진, STX가 최근 부족한 자금을 CP를 발행해 하루 하루 메우며 사태를 키우다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1957년 설립된 전통의 동양그룹을 벼랑 끝으로 내몬 주범도 매일 수십억~수백억원의 상환 요청이 돌아오고 있는 CP다.

2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기업 단기자금 조달의 핵심 수단인 CP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늦추는 방향으로 악용되며 경제 전반에 주름살을 지우고 있다.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이 자산 매각 등 적극적인 자구 노력 대신 CP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부실기업 입장에서는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감시와 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를 상대로 CP를 발행하면 간섭을 피할 수 있다. 만기가 돌아오면 같은 금액을 다시 발행해 되갚을 수 있고 발행 한도나 자격에 제한이 없는 점도 CP 의존도를 키우는 이유다. 실제로 1~2년 전부터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동양그룹의 경우 은행 대출은 6000억원 선에 불과하지만 CP 발행액은 1조1000억원에 달한다.

금융시장 전체로도 발행액이 지난해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하는 등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서도 발행 잔액이 20조원 가까이 불어나 26일 현재 144조5305억원에 달한다. 10년 전인 2003년 말 15조8000억원의 9.1배다. 회사채(무보증) 잔액이 194조원임을 감안하면 CP는 기업자금 시장의 핵심 수단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이 급성장했지만 부실한 관리 감독과 잘못된 투자 행태로 인해 위험은 커지고 있다. 만기(보통 3~6개월) 동안만 탈 없이 지나가면 된다며 한탕주의식으로 접근하는 기관이나, 정확한 기업 내용도 모른 채 고금리에 혹하는 개인 투자자가 많기 때문이다.

CP는 순기능이 많은 기업의 대표적인 단기자금 조달 수단이다. 자금 유출입이 많은 신세계 홈플러스 등 유통회사들은 일시적으로 결제대금이 필요할 때 싼 금리로 발행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감시 소홀을 틈타 마치 환자가 눈앞의 고통을 진정시켜 주는 ‘모르핀’을 찾는 것처럼 부실기업들이 CP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공시 의무가 없고 담보가 없어도 금리를 조금만 더 쳐주면 시장에서 투자자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정원현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수익창출 능력보다 과도하게 많은 CP를 발행하는 기업이 늘면서 금융시장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적극적인 감시와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김은정/이태호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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