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집시의 눈물

입력 2013-09-27 17:55   수정 2013-09-27 23:1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집시의 기원설은 다양하다. 첫 번째는 인도 북서부 펀자브 지방의 하층민들이 실크로드를 타고 흑해 연안에 도달한 뒤 루마니아 등 유럽 전역으로 흩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고향이 히말라야산맥에 닿은 산록이나 평야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랑을 떠난 시기와 관련해서는 5~6세기 훈족의 공격 때라는 설과 7~8세기 아랍의 침공 때라는 설 등이 섞여 있다.

국제학계에서는 이들의 유랑이 대략 11세기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집시언어와 당시 인도의 힌두어, 페르시아어와 아르메니아어를 비교분석하면 이들이 도나우강을 건너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와 북유럽에서 보헤미안, 타타르라고 불리고 독일에서는 치고이너, 헝가리에서는 치가니로 불린다. 집시(Gypsy)라는 말은 이들이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착각한 영국인들이 이집트인(Egyptian)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을 로마(Roma)라고 칭한다. 옛날 인도에서 사람이나 민중을 나타내던 말 ‘돔바’가 어원이다. 유럽의회도 이를 1995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다만 이탈리아의 로마 등과 헷갈리지 않도록 단어 앞에 소문자 ‘r’을 두개 겹쳐 쓰게 했다. 전 세계 집시 인구는 최대 2000만명, 유럽 거주자는 약 800여만명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혈연 또는 종족 집단끼리 계절 변화에 따라 정해진 길로 이동한다. 지금도 몇십 가족 단위로 집단을 이뤄 움직이며 가축중개나 악사, 땜장이, 약장수, 곡예사 일로 생계를 해결한다.

그러나 떠돌이들이 희생양이 되기 쉽듯 중세에는 마녀사냥으로 화형당하거나 생매장됐고 나치에 의해 60여만명이 학살되기도 했다. 이들의 방랑 기질은 거듭되는 추방으로 더욱 심해졌다. 최근에도 유럽 각국이 루마니아·불가리아 출신의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강제수용소에 보내는 등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내년부터 이들 국가의 통행제한이 풀리면 더 많은 집시들이 몰려들까봐 미리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배 고파서 떠도는 사람들을 영원히 비참하게 살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법무집행위원회도 곧 조사에 나설 모양이다. 어쩌면 집시들의 유랑 역사는 국가라는 괴물이 탄생하면서 국경선을 제멋대로 긋고 배타적 권력을 휘두른 이후에 만들어진 비련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들이 서유럽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는 15세기였다. 이후 거듭되는 추방과 이송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를 배회하고 있다. 누군들 처음부터 떠돌이로 살고 싶었겠는가마는 역마살 낀 이들 ‘이동하는 인간’에게 국경은 또 무슨 소용인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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