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인 1990년대 말 서통의 ‘썬파워’와 로케트전기의 ‘로케트’가 외국 업체인 듀라셀에 매각될 당시만 해도 국내 건전지 시장은 외국계로 다 넘어가는 줄 알았다. P&G가 국내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썬파워를 인수해 유명무실한 브랜드로 만들어 버렸고 로케트 브랜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브랜드로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건전지 시장은 국내 업체와 외국 업체 간 치열한 경쟁 시장으로 다시 바뀌었다. 토종 건전지업체 벡셀(사장 김용환·사진)이 건전지 국내시장 점유율 2위(브랜드 기준)로 치고 올라왔다.
○시장점유율 24.6%
벡셀은 옛 서통그룹 계열사인 ‘썬파워’가 전신이다. 썬파워는 국내 점유율이 한때 50%를 넘었지만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서통그룹이 어려워지면서 1997년 말 듀라셀에 썬파워 브랜드를 매각했다. 자기 브랜드를 쓰지 못하게 된 썬파워는 이후 새 브랜드 ‘벡셀’을 만들었고, 2006년 삼라마이더스(SM)그룹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용환 벡셀 사장은 “SM그룹 가족이 된 이후 OEM 대신 자체 브랜드를 키우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말했다.
17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건전지 시장에서 벡셀 브랜드의 점유율(지난 7월 기준)은 24.6%다. 1위인 에너자이저(44.5%)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3위인 P&G의 듀라셀(18.6%)에는 크게 앞섰다. P&G는 1998년 인수한 로케트(7.1%)를 OEM 브랜드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업체별로 따진 업계 순위는 벡셀이 3위다.
○‘거꾸로’ 마케팅 효과
벡셀은 외산 건전지보다 가격이 20~30% 싸지만 가격경쟁력만으로 시장을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포장지 전략을 시도했다. 김 사장은 “소비자는 제품별로 어떤 건전지를 써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며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장난감용’ ‘도어록용’ 등 용도별로 포장지를 만든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애국 마케팅도 했다. 벡셀이 한국 기업인 사실을 홍보하기 위해 영문 제품명(Bexel)에 ‘대한민국 건전지’라고 병기하기 시작했다. 태극기 문양도 새겨 넣었다.
벡셀의 시장점유율은 2006년 15%에서 지난해 24%로 올라왔다. 올해 매출은 415억원으로 지난해(363억원)보다 14% 늘어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김 사장은 “3년 전만 해도 P&G보다 점유율이 15% 이상 낮았지만 이제 턱밑까지 추격했다”며 “올해가 지나면 브랜드와 기업별로 모두 2위를 꿰찰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건전지 업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기업은 벡셀이 유일하다”며 “2016년까지 국내 시장 1등 업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새 성장동력 ‘2차전지’
벡셀의 또 다른 고민은 ‘2차 전지’다. 2차 전지는 재충전이 가능한 건전지로 여러 분야에서 쓰인다. 휴대용 분무기와 절단기 등 농기계, 자가진단용 의료기기, 자동차 보조전원장치 같은 틈새 시장을 개척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내년부터는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2차전지 사업은 3년 전부터 효자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며 “2016년께는 1차전지와 2차전지 사업 비중이 50 대 50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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