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무덤'에 손 댄 아베…藥될까 毒될까

입력 2013-10-01 17:03   수정 2013-10-02 01:49

벼랑끝 내몰린 日 재정적자 … 결국 17년만에 소비세 인상

호전된 경제지표에 '승부수', 부양책도 … 결과는 미지수
복지지출 삭감 등 난제 산적…역대 정권은 소비세로 단명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승부수를 던졌다. 작년 6월 여야 합의 이후 1년 이상 미뤄졌던 소비세율 인상안을 1일 최종 확정했다. 일본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소비세 증세는 경기에 미치는 충격이 크다. 1997년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렸을 때도 그 다음해부터 곧바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5조엔에 달하는 대규모 경제 대책을 마련하긴 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잘나가던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가 최대 고비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승부수 던진 아베

소비세율 인상은 정치적으로 ‘자살골’에 가깝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전체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고령자가 많은 일본은 더욱 그렇다. 일본은 60세 이상 유권자 비중이 37%에 달한다. 다른 세대에 비해 투표 참여율도 높다. 연금 이외에 추가적인 소득이 없는 노인 입장에서는 생활비에 직접 부담이 되는 소비세 인상이 달가울 리 없다. 전임 민주당 정권도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고, 1989년 소비세를 최초로 도입한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과 1997년 첫 번째 증세를 단행한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도 모두 단명했다. 소비세가 ‘정치적 무덤’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아베가 결국 증세 카드를 꺼낸 것은 그만큼 일본의 재정 상황이 벼랑 끝에 몰렸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0%를 훌쩍 넘어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악이다. 세월이 지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로 인해 매년 복지 관련 비용만 1조엔씩 늘어난다.

소비세를 올렸다고 일본의 재정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출을 줄이지 않는 한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 일본 민간 연구단체인 21세기정책연구소는 소비세율이 10%로 인상되더라도 추가적으로 복지 지출을 삭감하지 않으면 2050년께 일본의 국가 부채율은 600%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5조엔짜리 경기 안전판

각종 거시 경제지표가 눈에 띄게 호전된 것도 아베의 배짱을 키운 요인이다. 정치적 계산은 제쳐 두고라도 경제적 충격만큼은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일본의 지난 2분기(4~6월) GDP 증가율은 3.8%(연율 기준)로 뛰어올랐다. 소비자물가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디플레이션 악령’에서도 조금씩 벗어나는 분위기다. 기업들의 체감 경기도 크게 호전됐다. 이날 일본은행이 발표한 지난달 기준 대기업(제조업) ‘단칸지수’는 직전 조사(6월)에 비해 8포인트 상승한 12를 기록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07년 12월 이후 5년9개월 만의 최고치다. 단칸지수가 플러스를 기록하면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아베는 이날 소비세 증세 결정과 함께 5조엔 규모의 대형 경제 대책도 발표했다.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의 상당 부분을 감세와 공공투자를 통해 되돌려주겠다는 취지다. 감세는 약 2조엔, 재정 지출은 3조엔가량으로 잡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앞으로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임금 인상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뤄지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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