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객주

입력 2013-10-03 18:21   수정 2013-10-03 21:48

“용수·채반·시루밑 사시오. 수수비·방비·빨랫줄도 있소~” 조선 후기 행상들이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골목을 누비며 외쳤던 소리다. 당시 이들의 등짐에는 간장이나 술을 거르는 통(용수)과 얼기설기한 그릇(채반), 수수빗자루 등이 가득했다. 이런 풍물은 반세기 전 아낙네들을 설레게 한 ‘동동구리무’까지 이어졌다.

봇짐장수(보상)와 등짐장수(부상)를 보부상, 이들이 각 지역에서 단골로 거래하는 도매상을 보상객주라고 불렀다. 객주(客主)란 전국의 상품 집산지에서 물건을 맡아 팔거나 매매를 주선하고 운송·숙박·금융업까지 겸하는 중간상인을 말한다. 요즘 상법으로 치면 대규모 위탁매매업자다. 조선시대에 이들의 업무는 놀라울 정도로 세분화돼 있었다.

의주에는 중국상인만 상대하던 만상객주(灣商客主)가 있었다. 인삼거래로 국제무역 거상이 된 임상옥도 의주 사람이다. 일반인의 숙박만 담당하던 보행객주,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환전객주,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무시객주도 있었다. 화물 종류에 따라서는 청과객주, 수산물객주, 곡물객주, 약재객주 등으로 나뉘었다. 서울 동대문시장 부근은 채소, 남대문시장 부근은 수산물 집산지로 유명했다.

객주는 어느 한 쪽이 물건값을 지급하지 못하면 자기 돈으로 충당하는 등 고객 신뢰를 최고 덕목으로 삼았다. 대행수(지도자)는 이 같은 ‘자행책임’의 상거래 관습을 토대로 유통 질서를 확립했다. 이른바 불완전판매나 사기거래를 줄이려는 노력은 지금보다 나았다. 흉년이 들면 쌀을 나누며 구휼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본가계급으로 성장한 이들은 1876년 개항 이후엔 외국무역까지 맡았다. 1889년 인천 부산 등에 정부 지정의 25객주제를 형성했다. 그러다 일본자본의 압력과 과중한 납세 등으로 쇠락하기 시작했고 1930년에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객주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광복 이후 되살아난 이들은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경제성장의 주춧돌을 놓으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19세기 말의 시대상과 보부상의 활약을 그린 김주영 소설 《객주》가 34년 만에 10권으로 완간됐다고 한다. 74세 현역 작가의 발품과 열정이 놀랍다. 엊그제 세상을 떠난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서도 사농공상의 통념에 매몰된 조선 사회에서 상인과 경영의 도를 깨우쳐준 거상 임상옥의 정신을 배울 수 있다. 상업자본 형성기에 숱하게 명멸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뿌려놓은 번영의 밑거름을 문학의 거울로 비춰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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