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 4000명 이끄는 '여장부'…연간 의류 수출 1억弗 달성

입력 2013-10-04 06:59  

신성비나- 김정희 법인장

경영 포인트
① 투명경영으로 경쟁력 향상
② 업무효율화로 원가 절감
③ 바이어 요구 즉각 수행

신성통상 베트남 현지법인
45년 만에 첫 여성 법인장

관리직 줄이고 현장인력 늘려 원가 절감·생산성 향상
여성 섬세함 살려 경쟁력 제고…생산제품 대부분 美 수출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올해 1월 말. 김정희 신성비나 총괄부장은 귀를 의심했다. 본사인 신성통상의 염태순 회장(60)이 찾아와 신성비나 법인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기존 법인장이 미얀마로 발령나면서 이 자리가 공석이 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그로부터 보름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 어떻게 이 거대한 신성비나를 이끌 것인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일을 한번 맡으면 완벽하게 처리하는 스타일이어서 고민은 더욱 깊었다. 보름 동안 몸무게가 1.5㎏ 빠졌다. 지난 2년 동안 열심히 운동해도 살을 빼기 힘들었는데 저절로 빠진 것이다.

신성비나는 2003년 9월 출범했다. 1968년 설립된 신성통상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만든 법인이다. 호찌민 중심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롱안 등에 모두 4개 공장을 두고 있다. 생산라인은 77개다. 1개 라인은 옷을 완성하는 단위로 보통 25~30대 재봉기로 이뤄진다. 뒤에서 봉제를 시작해 순차적으로 앞으로 보내면 마지막 맨앞에 있는 직원이 마무리해 의류를 완성한다. 신성비나는 약 2000대의 재봉기를 보유하고 있다. 공장의 전체 부지 면적은 10만㎡(약 3만평)에 이른다.

원단 입고 후 재단을 거쳐 재봉기로 옷을 만든 뒤 검사와 포장을 거쳐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된다. 생산제품은 셔츠 바지 드레스 등이다. 소재는 면 폴리에스테르 합섬 등이다. 연간 1억달러에 이르는 수출 가운데 대부분은 타겟 GAP 올드네이비 렌젠드 에디바우 등 주력 바이어들에게 인도된다.

그가 법인장을 맡게 된 것은 공장 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경험 덕분이었다. 20대 중반부터 서울의 의류업체에서 일을 배운 그는 경리 무역 총무 등의 업무를 익혔다. 세관을 드나들며 통관도 배웠다. 여상 출신으로 주산·부기·전산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대학시절 배운 전산이 사회에 진출해 업무를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0여년간 국내에서 일한 뒤 베트남으로 발령난 그는 2년간 베트남어를 익히는 등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2008년 신성비나로 옮겨 경리 무역 총무 등의 일을 보던 그는 과감한 변신에 나섰다. 생산을 몰라서는 이 분야에서 성공하거나 장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생산 업무에 도전한 것이다. 오전에 경리 총무 무역 등 관리업무를 빨리 마치고 오후에는 생산현장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경리 총무 등의 업무는 한국인이나 베트남 직원들을 가르쳐 점차 넘겨주며 전체적인 사항을 점검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재단 봉제 검사 선적 등 생산과 물류 관련 업무를 배웠다”고 김 법인장은 설명했다. 대부분의 경영자는 기획 관리 등 사무직이나 생산분야 중 한 가지를 택해 경력을 쌓지만 김 법인장은 각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것이다.

3년 정도 현장일을 배우자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 법인장은 “인건비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지만 미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 때문에 납품 가격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에 따라 원가 절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상비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장 자체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다. 그는 인력 재배치에 나섰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서 인원을 늘리고 지원부서 인원은 줄이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봉제는 제품의 생산성과 품질과 직결된 부서다. 이 인원을 늘리는 대신 지원부서나 준비부서(원단입고 재단 등)의 인원을 줄였다. 그 결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수익이 늘기 시작했다.

그는 1월 말 법인장을 맡으면서 몇 가지 혁신을 단행했다. 우선 극소수 직원들의 나쁜 손버릇을 고치는 일이었다. 김 법인장은 “가끔 퇴근길에 직원 중에 자기 아이에게 입힐 유아용 의류를 갖고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근절하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관리자에게 책임을 맡기고 문제가 발생하면 엄격히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일부 관리자는 “그게 왜 내 책임이냐”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김 법인장은 “불과 1달러짜리 옷 한 벌 때문에 직원이 징계받으면 관리자가 그 업무를 대신 해야 하니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며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들이 일반 근로자보다 3배가량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책임을 다하라고 대우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때부터 직원들은 뒤에서 그를 ‘독한 여자’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철저한 관리 덕분에 몇 달 뒤 이런 일은 거의 사라졌다. 처벌받는 근로자도 급격히 줄었다.

김 법인장은 “극소수 직원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전체 직원들이 불신을 사는 일이 사라져 아주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국 직원과 베트남 근로자 간의 신뢰가 더 깊어진 것은 물론이다.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려면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사회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었다.

그는 8월 하순에는 다른 봉제업체에서 2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 여성 관리자를 스카우트해 ‘제3공장장’으로 임명했다. 이 공장의 근로자는 800여명에 이른다. 그는 “여성의 섬세함을 최대한 살려 회사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나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가 관리하는 4개 공장의 공장장들은 나이가 47~55세로 자신보다 많다.

그는 앞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선두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다. 바이어가 어떤 제품을 요구해도 뛰어난 품질과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출 생각이다. 이를 위해 직원교육을 강화하고 기술력과 숙련도를 더 높여나갈 생각이다.

김 법인장은 “최근 3년 새 베트남 직원의 평균 인건비는 110달러에서 290달러로 2.6배나 올랐다”며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원가 절감을 통해 공장 경쟁력을 최대한 높이는 게 베트남 진출 기업들의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이런 과제를 그는 현장에서 익힌 기획 관리 경리 등의 지식과 생산현장 경험을 접목시켜 하나씩 풀어나갈 생각이다.

신성비나는 신성통상의 베트남 현지법인이다. 의류를 연간 1억달러 수출한다. 이곳의 경영을 총괄하는 사령탑은 김정희 법인장(45)이다. 그는 20년의 의류업계 종사 경험을 살려 4100명이 일하는 신성비나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신성통상 역사상 첫 여성법인장이다. 그가 법인장까지 올라가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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