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매년 예산안을 법률로 정한다. 의회에서 예산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별도 법률에 의해 매년 자동으로 지출되는 ‘의무지출 항목’을 제외한 재량지출(예산법에 근거)을 할 수 없어 핵심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공공 프로그램이 중단된다. 핵심 서비스는 군인 경찰 소방 교정 기상예보 우편 항공 전기 수도 등 국민의 생명 및 재산 보호에 직결되는 것들로 이를 맡은 공무원은 업무는 계속하지만 보수는 예산안이 의결돼야 소급 지급된다.
# 클린턴 행정부 땐 21일 셧다운
백악관은 연방정부 기관에 미리 마련된 방침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셧다운을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반대편에 선 공화당은 한동안 셧다운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고 나서 셧다운을 조기 종료하기 위한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점쳐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불행하게도 의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의회를 겨냥하면서도 “의회와 협조해 가능한 한 빨리 정부 문을 다시 열고 공무원들이 일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셧다운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가장 최근인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1995년 12월16일부터 이듬해 1월6일까지 셧다운 사상 최장 기간인 21일간 정부가 문을 닫기도 했다. 정치권이 열흘간의 핑퐁 게임에 지쳐 있는 데다 합의 기미조차 없는 교착 상태를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협상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여론이 셧다운 책임 소재를 공화당으로 보고 있는 등 민주·공화 양측의 정치적 부담이 커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 美 경기흐름은 '긍정적'
연방정부 폐쇄에도 증시는 차분히 반응했다. 셧다운이 시작된 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저가 매수세 유입 등으로 상승했다. 투자자들이 미국 경제의 점진적인 회복세가 적어도 당분간은 타격을 입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RDM파이낸셜그룹의 수석 시장전략가 마이클 셸던은 “현재 미국 경제의 큰 흐름은 긍적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런 기조가 갑자기 악화되지 않는 한 증시는 향후 6개월~1년 동안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셧다운이 오래 지속될 경우에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모건스탠리는 셧다운이 1주일에 분기별 성장률을 0.15%포인트씩 깎아먹을 것으로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3주 동안 정부가 폐쇄되면 4분기 성장률이 2분기(2.5%)에 비해 0.9%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 부채한도 상향 실패 땐 대혼란
그러나 정치권은 셧다운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16조7000억달러인 국가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협상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 이달 17일이면 미국 재무부의 현금 보유액이 바닥나기 때문에 채무 상한을 다시 올리지 않으면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인해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에 빠질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 부채 현안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반면 공화당은 이 문제 또한 오바마케어와 연계한다는 방침이어서 쉽사리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 정치권이 예산 공방에서 보였던 것처럼 국가 채무 한도를 재조정하는 문제를 놓고도 대치 일변도의 행태를 보인다면 미국 및 세계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정치권은 2011년에도 국가 부채 재조정에 난항을 겪었고,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사상 최초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렸다. 당시 등급을 강등하지 않았던 무디스와 피치는 이번에도 채무 한도 조정에 실패하면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실물경제에도 '찬물'
정치권 교착 상태와 예산 정책의 불확실성은 실물경제에도 찬물을 끼얹을 전망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소비자들도 지갑을 닫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시간대가 조사하는 소비자신뢰지수는 8월 82.1에서 지난달 77.5로 하락했다. 또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예산전쟁으로 고용 계획을 축소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제임스 맥너니 보잉 CEO는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이 지도력을 발휘해 타협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의 경제 성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병종 한국경제신문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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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예산 발목 잡은 '오바마케어'…전 국민 보험 가입이 골자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가 정쟁의 대상이 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1기부터 핵심 정책과제로 추진해온 오바마케어는 민간보험 중심의 기존 미국 의료보험 체계에 대수술을 가하려는 시도다. 대다수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여서 지난 수년간 ‘보편적 건강보험제도’를 둘러싸고 격렬한 이념 논쟁을 불러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건보개혁법을 내년까지 본격 시행해 사실상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다. 정부와 기업이 비용 부담을 거들어 무보험자 3200만명의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고용주에게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이 경우 건보 수혜자 비율은 전 국민의 95%로 높아진다.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0월부터는 제도의 성패 여부를 좌우할 개인의 건강보험 의무 가입 조항이 적용된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국민은 조항에 따라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하며, 이를 위해 보험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건강보험 장터가 10월1일 문을 연다. 미가입자들은 주정부나 연방정부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임금 수준에 따라 다양한 보험을 고를 수 있다. 혜택은 이르면 내년 1월1일부터 받을 수 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오바마케어 시행을 위한 정부 지출이 2013년부터 10년간 총 1조7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오바마케어는 그 성격 탓에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가 하면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사회주의 실험’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민주당은 오바마케어가 포함된 예산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공화당은 정부 지출이 늘어날뿐더러 벌금 부과로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며 오바마케어 시행을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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