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본시장 '비상구'가 없다] 성과급커녕 회식도 사라져…"채권판매 늘려라" 실적 압박은 가중

입력 2013-10-06 17:11   수정 2013-10-07 02:04

(1) 칼날 위를 걷는 증권맨들

거래소 경력직 모집에 3~4년차 150명 몰려
대우·현대증권 신입사원 모집공고도 못내




“금융회사든 제조업체든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다시는 여의도로 출근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아요.”(B증권 애널리스트)

“비용 절감을 강조하다 보니 아예 회식이 사라졌습니다. 요즘엔 부서원 간 소통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D증권 부장)

증권사들의 수익성이 나빠진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동양증권 사태’와 맞물리며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는 게 증권업계의 하소연이다. 증권사 고객들이 채권 투자를 기피하는 등 금융투자업계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증권업계의 불황이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위주의 영업 관행에서 기인한 구조적인 문제인 데다 당국도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오히려 강화하는 추세여서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증권사들, 신입공채 전면 중단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어김없이 진행했던 ‘신입 공채’를 전면 중단하는 증권사가 속출하고 있다. 매년 말 30여명씩 신입사원을 뽑아온 한화투자증권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공채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래에셋증권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관계자는 “2년 연속 신입 직원을 뽑지 못하는 것은 1999년 창사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매년 9월 초 공채를 실시해온 대우증권과 현대증권은 모집 공고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50여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은 대신증권은 올해는 한 명도 선발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회사 측은 “1998년 외환위기를 빼놓고는 정기 공채를 해온 터여서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한국거래소가 지난달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내자 증권사 3~4년차 직원 150여명이 몰린 것도 업계를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거래소는 이달 중 서류 및 면접 심사를 거쳐 10명 안팎을 ‘신입직’으로 정식 채용할 계획이다. 삼성증권은 지난 8월 자체 구조조정 차원에서 직원 100여명을 삼성생명 삼성전자 등 다른 계열사로 전보 발령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63개 증권사의 지난 6월 기준 근무인력은 총 4만1687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4만3586명) 대비 4.4% 감소했다. 전국 영업점은 같은 기간 1744곳에서 1549곳으로 11.2% 급감했다. 예컨대 하나대투증권 점포는 101곳에서 87곳으로, 메리츠종금증권 점포는 32곳에서 20곳으로 각각 줄었다.


○“일은 늘고 임금은 깎이고” 설상가상

‘동양증권 사태’ 이후 증권사 직원들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중견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다 보니 그룹사 채권 판매를 독려하는 등 갖가지 요구사항이 늘고 있다”며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동양증권처럼 회사에서 나몰라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글프다”고 했다.

증권사들이 내부적으로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나서면서 임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이란 전언이다. 한 대형사 직원은 “연초 비상경영을 선포한 뒤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쓰고 점심 땐 항상 소등하고 있다”며 “지점 축소 후 많은 영업인력이 본사로 발령나서 그런지 사무실도 비좁아졌다”고 불평했다.

증권사 직원들은 인센티브 수령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다. 연초 세운 수익 목표를 달성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M사 관계자는 “항상 연초에 성과급을 받아왔는데 내년엔 임금이 깎이지만 않아도 다행이란 분위기”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의 이 같은 위기는 주식거래 위축에 따른 수수료 수입 감소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올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4조615억원으로, 작년(4조8241억원)보다 15.8% 줄었다. 작년 2월 최고점(6조8482억원)을 찍은 거래량은 올 7월엔 3조8642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파생상품시장은 더욱 심각하다. 올 상반기 거래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69.2% 감소했다. 옵션거래승수 상향조정 등 금융규제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조재길/윤희은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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