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원들은 특권 틀어쥐고 정쟁 허송세월
지난달 12일 오전 9시50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중심의 헬렌스홀멘 섬. 큰 키의 금발 여성이 4층 높이의 석조 건물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자물쇠를 채우며 지나가는 시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그는 자전거 앞 바구니에서 가방을 꺼내 ‘릭스가탄(riksgatan) 1’이라는 주소가 적힌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제대로 눈에 띄는 팻말 하나 없는 이 건물은 스웨덴 국회의사당이다. 자전거를 타고온 여성은 스웨덴 여당인 중도당의 소피아 아르켈스텐 의원이다. 2010년 10월부터 1년7개월간 당 대표를 지냈고 지금은 국회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스웨덴 정계의 거물이다. 그는 기자에게 “거의 매일 의사당에서 4㎞가량 떨어진 집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며 “교통혼잡을 피할 수 있고 출근길에 시민을 두루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달리 스웨덴 국회의사당에서는 검은색 승용차를 찾아보기 힘들다. 의원 상당수가 아르켈스텐 의원처럼 자전거나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의원들 스스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회’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 의원들은 일 많이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웨덴 국민들은 1주일에 평균 30시간가량 일하지만 국회의원의 근무시간은 평균 66시간에 달한다. 한 달 월급은 5만5000크로나(925만원)지만 스웨덴 물가가 한국보다 1.5배 정도 비싼 것을 고려하면 한화 616만원 정도다. 한국 국회의원(1175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아르켈스텐 의원은 “국회의원은 국민이 준 권위와 세금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회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하는 일종의 미장이(건물에 시멘트 등을 바르는 일을 하는 사람)”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본고장 영국도 비슷하다. 영국 의원들도 상당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최근 의원들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보안문서를 잃어버리는 일이 자주 벌어지면서 전용차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의원들 스스로 ‘그럴 순 없다’며 무산시켰을 정도다.
정쟁으로 날을 새우는 한국 국회와는 너무나 다르다. 지난 9월2일 시작된 정기국회는 국정원 국정조사와 같은 정치 싸움으로 한 달을 허송세월했다. 쟁점 법안에 대해 재적의원 5분의 3이 찬성해야만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은 여야의 극단적인 대결 속에서 ‘식물국회법’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국회가 입법 만능주의에 빠져 3권 분립 원칙을 무시하고 행정권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쟁으로 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의원들은 각종 특권을 남용해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고 우려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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