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 이후 2년만에 대규모 소비자 피해 발생
동양증권 무리한 CP판매…감독당국도 책임 면치 못해
“증권사 직원이 원금 손실 걱정 없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했어요. 경쟁률이 높으니까 빨리 사야 한다고도 했고요. 8700만원이나 투자했는데….”(60대 주부 K모씨)
“저도 모르게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있던 돈이 동양그룹 기업어음(CP)에 투자돼 있었어요. 증권사에서는 금리가 높은 상품으로 자금을 옮겨 놓은 거니까 안심하라고 하더군요. 이제 누가 책임질 겁니까.”(50대 자영업자 C모씨)
동양그룹 5개 계열사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동양증권에 속았다”며 금융감독원과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에 하소연하고 있는 피해자들 사연의 일부다. 자녀 혼수비용, 전세보증금, 노후자금 등을 잃게 됐다는 피해자들은 “동양 직원들이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불완전 판매 논란이 여지없이 불거지고 있는 셈이다.
○자금조달 위해 소비자 보호는 뒷전
불완전 판매란 소비자에게 펀드나 채권 등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에 대한 기본내용과 투자 위험성 등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고 파는 것을 말한다. 저축은행 후순위채, LIG그룹의 CP 판매 등은 불완전 판매로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야기했던 사례다. 일부 사례는 법원에서 ‘사기’로 판명돼 사법 처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불완전 판매로 소비자보호 필요성을 절실하게 일깨웠던 것은 저축은행 후순위채 파동이다. 저축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후순위채를 높은 금리로 무리하게 판매했다. 저축은행들이 영업정지된 뒤 금감원에 신고된 피해 건수만 1만4410건(피해액 7366억원)에 달했다. 이후 감독당국과 금융회사들은 소비자보호장치를 강구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동양사태로 소비자 보호는 구호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실적에 급급한 동양증권 직원들은 투자 위험은 최대한 감추고 투자 수익만 부풀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금융회사 직원은 “자금조달을 위해 판매를 재촉하는 그룹 경영진 앞에서 직원들은 소비자 보호라는 용어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독당국도 말로만 ‘소비자보호’
감독당국도 동양사태의 불완전 판매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감원은 지난 4년간 동양증권을 상대로 세 차례나 검사했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검사팀에선 동양증권에 적기시정조치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위에서 묵살했다”며 “본인이 자리에 있을 때 피를 묻히기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하반기 “구조조정을 할 테니 시간을 달라”는 동양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CP 관련 규제를 미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독당국의 다른 관계자는 “동양이 선제적 구조조정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고 하는데, 감독당국도 동양 관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자책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완전 판매를 사전에 차단할 ‘미스터리 쇼핑’이 제대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금감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 해외펀드 투자 손실이 급증하자 펀드 변액보험 파생결합증권 등에 대한 미스터리 쇼핑을 도입했다. 그러나 회사채와 CP는 소비자가 발행 기업의 신용위험만 판단하면 되는 단순한 금융상품이라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고금리를 준다면 위험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일부 투자자들의 행태다. 고금리를 제시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만큼 위험성을 면밀하게 따져봐야 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금융회사와 소비자가 알고 있는 정보의 차이가 큰 만큼 금융회사와 감독당국의 소비자 보호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대표는 “동양 회사채와 CP 판매는 상당 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진행된 소비자 기만 행위”라며 “구조적으로 이뤄진 일이어서 누구든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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