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국 외교로 새 질서 틀 만들어
한국 외교의 지평을 확대해 나갈 것"
윤병세 외교부 장관 bsyun77@mofa.go.kr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브라질에서의 나비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자연현상의 불가분성을 지적한 말이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01년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서 ‘인류는 나비효과를 경험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까지 확대됐다. ‘우리의 운명은 모두 연결돼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이런 ‘나비효과’의 통찰이 현재처럼 선명히 부각된 시대는 없었다. 세계 정부가 없는 현실에서 상호 연결된 불가분의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30여년 전 필자가 외교관 생활을 시작할 때와 비교해 볼 때,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동북아에서의 갈등, 그리고 국제질서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은 반면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성과 우리의 주체적인 역량이 크게 증대한 것은 무엇보다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화와 상호의존성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핵확산 및 핵안전·테러·사이버 보안 등 안보 문제는 물론, 기후변화·환경·개발·인권 등 주요 경제사회 이슈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의제들이 점점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해지고 있다. 또한 이전의 규범과 질서가 강대국 중심의 힘에 기초했다면 이제는 범세계적 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한 공통의 가치와 정당성도 중시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성격을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미 글로벌 거버넌스는 수사적 담론이 아닌 현실적 이익이자 치열한 국익 다툼의 현장이 되고 있다. 이것은 커다란 도전이지만 또한 기회이기도 하다.
신정부는 출범 이전 외교의 밑그림을 그릴 당시부터 우리가 직면해 있는 다양한 종류의 도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들 문제는 각각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신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에 기반한 한·미·중 전략공조,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지구촌 행복 외교와 중견국 외교 전략 등을 구상했다. 이들은 모두 신뢰외교의 핵심요소이자 주요 국정목표이다.
중견국 외교는 국제사회 내 한국의 위치에 비춰 한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수단이다. 신뢰 외교의 핵심 가치인 신뢰는 국가 간 협력의 수준과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는 아교(阿膠)와 같은 것으로서, 강대국은 의심받고 약소국은 능력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독특한 외교적 자산으로 키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화와 산업화를 단기간에 성취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인권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등 유엔 내 3대 이사회 이사국으로 활동하면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로서 더욱 그러하다.
지난달 25일 뉴욕에서 우리 외교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 외교장관이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지난 수개월간 양자, 3자 협의 과정에서 자연스런 교감을 통해 이루어진 회의였다. 필자는 출범회의에서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오늘의 조그만 출발이 향후 글로벌 이슈 논의과정에서 그리고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국가의 국가명 첫 글자를 모아 ‘MIKTA’로 명명한 새로운 협의체 출범에 세계는 이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외교협회(CFR)에서도 “MIKTA 협력은 한국 외교의 중요한 발전이고 외교 지평을 넓힐 기회”라고 평가하면서 한국의 새로운 시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견국 외교는 중진국 외교가 아니다. 중진국은 말 그대로 기존 질서 속에서 중간에 위치하는 국가일 뿐이다. 그러나 중견국 외교는 국제 질서를 받아들이던 소극적 위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레짐 설계자, 선량한 조정자 내지 가교 역할을 추구한다. 중견국 외교는 국제무대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우리 외교의 간척사업과 같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선실에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격랑 속의 국제무대에서 펼쳐지는 외교의 조타수 역할을 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윤병세 < 외교부 장관 bsyun77@mofa.go.k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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