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나빠지기 전에 읽다 만 ‘카산드라의 거울’을 마저 읽고 싶은데 몇 년째 수소문했지만 구할 수가 없네요.”(김한솔·20·시각장애 1급)
“점자책으로 읽은 베토벤 위인전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졸업 후에도 음악을 계속 공부하고 싶은데 베토벤과 쇼팽의 악보를 구할 방법이 없어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연습하고 있어요.”(이은복·17·시각장애 1급)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찾은 서울 수유1동 한빛맹학교.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시각장애 학생 132명이 공부하는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하나같이 “새로 나온 재미있는 책들을 읽고 싶지만 구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올해로 567년째, 한글날이 22년 만에 다시 국경일로 지정됐지만 25만여명에 달하는 국내 시각장애인들에게 한글날은 더욱 서럽다. 점자서적과 교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어서다.
○점자서적은 전체의 1% 안팎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국내에서 출판되는 5만여권의 책 중 시각장애인이 접할 수 있는 형태(점자서적, 디지털음성도서 등)는 1%대인 500~1000권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열고 전국에 36곳의 장애인도서관을 운영하며 일반 서적을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리한 대체자료 형태로 변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국립장애인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장애인 이용 가능 자료는 1만4000여건이다. 장보성 국립장애인도서관 사무관은 “도서관법이 개정되면서 2010년부터 정부가 일반 서적을 점자서적과 디지털음성도서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서도 “문서 파일 형태로 책이 만들어지면 불법 유통될 것을 우려하는 출판계를 설득하는 작업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일반 도서가 아닌 전공 서적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시각장애 학생 대부분이 그나마 점자나 음성파일로 된 전공 서적이 많은 사회복지학과나 특수교육과로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제대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장창우 씨(25·시각장애 1급)는 “전공 서적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친구가 도와줘 책의 내용을 일일이 문서 파일로 만들어 음성으로 들으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높은 점자 문맹률
점자서적과 음성도서를 접하기 힘들다보니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읽지 못하는 점자 문맹률은 매우 높다.
시각장애인 단체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지 못하는 점자 문맹자의 비율은 60~85%에 달한다. 자라면서 시력을 잃은 중도 시력장애인들의 점자 문맹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각장애인들의 인터넷 접근성을 연구하는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의 강완식 소장은 “전국에 13개밖에 없는 맹학교나 복지관 등에서 점자를 배우지 못한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점자 문맹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장애인들의 독서를 도와주는 정보통신 보조기기도 고가인 탓에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4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점자정보 단말기와 디지털 확대경, 음성변환 소프트웨어, 음성변환 스캐너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점자 키보드로 입력한 내용을 음성으로 출력하고, 문서파일을 음성으로 전환해주는 점자정보 단말기는 550만원의 고가로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최고 11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고웅재 한빛맹학교 교무부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전교생 130여명 중 자기 소유의 점자정보단말기를 갖고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고 아쉬워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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