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라이프스타일 바꾸는 시장 창출형 제품 만들라 주문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새해 벽두부터 올해 화두를 ‘시장선도’와 ‘철저한 실행’이라고 못박았다.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LG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이제 1등기업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새해 첫 임직원들과 만남 때부터 “결국 시장선도 상품으로 승부해야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스스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선도 기업도 위기”
시장선도에 대한 의지와 이대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은 1년 내내 이어졌다. 구 회장은 지난 3월 “이제는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마저 그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때일수록 고객을 대하는 자세에 변함이 없어야 시장 선도기업을 향해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다”며 “최고의 상품을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는 열정과 패기가 조직 전체에 가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엄격한 고객 입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일상화된 혁신을 통해 품질, 마케팅, 서비스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자”고 독려했다.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우리의 의지가 더욱 강해지고 제대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도 당부했다.
9월 ‘시장을 선도하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뒤 8개월이 지난 후 중간 평가를 내리는 자리에선 “판을 바꿔달라”고 주문했다. 구 회장은 5월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는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그동안 기존 상품을 개선하는 일을 잘해왔고 최근에는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 또한 많아지고 있다”면서도 “시장을 뒤흔들거나 판을 바꾸기에는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우리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는 상품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 관계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장을 진정 선도하려면 기존 제품보다 개선된 상품을 내놓는 것은 기본이고 고객의 삶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시장 창출형 상품을 만들어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시장 창출형 제품으로는 애플 아이폰과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등이 꼽혔다.
○“의미 있는 실패는 더욱 격려하라”
하반기에 들어선 채찍보다 당근을 자주 들었다. 임직원들에게 주문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격려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구체적으론 실패의 긍정적 의미를 강조했다.
구 회장은 7월 임원 세미나에서 “한번 결정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힘을 모아 기필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시장을 뒤흔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상품과 국내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사업이 있다”며 “이런 목표를 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실패에 대해서는 더욱 격려하겠다”고 했다.
다소 추상적이라는 평가가 있었던 시장 선도의 구체적 의미도 풀어 설명했다. 그는 “시장을 선도한다는 것은 LG로 인해 고객의 삶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제부터는 경영진 모두가 고객의 삶을 확연히 바꾸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장선도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고객의 삶을 바꾸는 건 단기간에 이루기 힘든 매우 도전적 목표인 건 사실”이라며 “지난달 전략보고회를 통해 논의한 사업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2개월 뒤엔 창의력을 강조했다. 구 회장은 9월 임원세미나에서 “남들과 다른 방법을 찾아 과감하게 도전하고 끈질기게 실행해 시장을 선도하는 성과를 하나둘씩 만들어 낼 것”을 당부했다. 또 “사업 책임자가 의사결정을 주저하며 제대로 승부하지 못하거나 단기 성과 때문에 사업의 큰 흐름을 놓치면 결코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실행에 대해선 비록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 경제위기 가능성도 경계했다. 구 회장은 “선진국 경기는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신흥국 시장은 오히려 둔화되고 있다”며 “경영환경 변화에 흔들림이 없는 견실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에너지·자동차부품·리빙에코·헬스케어…차세대 성장동력 4가지
LG는 지난 7월 인천 경서동에서 ‘LG전자 인천캠퍼스’ 준공식을 열었다.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친환경 자동차 부품 전용 연구개발(R&D) 단지를 완공한 것이다. 그러면서 흩어져 있던 전기차 부품 사업을 이곳에 모았다. 독일 보쉬가 내연기관 차량용 부품의 1인자가 된 것처럼 세계 전기차 부품 시장을 제패하기 위해서다. LG 관계자는 “그룹의 4대 차세대 성장 사업 중 전기차 부품 부문이 가장 먼저 커질 것”이라며 “시장을 선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LG는 에너지와 자동차 부품, 리빙에코, 헬스케어 등 4대 사업에서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대표 주자는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를 필두로 한 자동차 부품이다. 구체적인 성과물을 수확하는 시기가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LG는 2011년 11월부터 3100억원을 들여 인천에 연면적 10만4621㎡(약 3만1648평) 규모의 자동차 부품 R&D 단지를 완성했다.
LG는 에너지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발전용 연료전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스마트빌딩, 태양전지 등이 핵심 역할을 한다. 다른 국내 기업보다 발빠르게 움직인 부문은 발전용 연료전지. LG는 작년 6월 영국 롤스로이스에 4500만달러를 주고 연료전지 업체를 인수했다. 인수 직후 사명도 LG퓨얼셀시스템즈로 바꿨다. 지주사인 (주)LG와 대표 계열사인 LG전자, LG화학이 대주주로 참여했다.
리빙에코 부문도 LG의 미래 먹거리다. 발광다이오드(LE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중심으로 한 차세대 조명 사업과 수처리 사업이 리빙에코 부문의 양대 축이다. 차세대 조명 사업은 LG이노텍과 LG전자가 이끈다. LG이노텍이 LED 칩과 패키지, 모듈을 생산해 LG전자에 납품하면 LG전자가 LED 조명 완제품을 생산한다. LG화학은 OLED 조명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수처리 사업은 LG-히타치 워터솔루션과 하이엔텍이라는 회사가 중심 역할을 한다.
헬스케어 부문은 LG유플러스가 주축이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척추전문 병원인 자생한방병원과 스마트 헬스케어 부문에서 제휴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LG유플러스의 유무선 정보통신 기술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환자의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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