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경제의 만남] <6> 보이지 않는 경기변동 매니저, 기상컨설턴트

입력 2013-10-11 16:17  


기업의 의사결정은 경직적이다. 삼성이나 애플과 같이 유연함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뤄내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경영전략 수립에 기본이 되는 가격과 생산량을 결정함에 있어 국내외 경기변동이나 소비자 인식 변화 등 예상 가능한 모든 요인을 고려해 그 수준을 판단한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발생해 당초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갑작스럽게 생산량이나 가격을 조절할 수가 없다. 자칫하면 시장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처럼 불확실성의 위협과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어 아무리 유연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경직적 의사결정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각 기업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통해 경영전략을 수립하는데, 이는 불확실성으로 인한 손실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위험 요인에 대비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측이 어려워 기업들에 자주 손실을 초래하는 요인이 존재한다. 바로 ‘날씨’다.

미국 메릴린치사(社)의 유통분석전문가는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주요 요인으로 경제 현황과 판매량 그리고 날씨를 꼽았다. 날씨가 수익의 증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원인으로 소개한 것이다. 최근 발표된 유엔 산하 국제전략기구인 ‘UNISDR’의 보고서에 따르면 날씨 급변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이 감소하고 경제적 손실액은 최소 25조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날씨 변화에 대비하지 못해 입게 되는 손해가 매우 직접적이고 막대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지구 온난화 같은 기상 악화 요인은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더 커지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인 것이다.

날씨 위험관리의 전략가

이런 시대적 요구로 등장한 직업이 바로 ‘기상 컨설턴트’다. 이들은 날씨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위험요소들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중장기 예보에 활용해 다양한 날씨 위험관리 전략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민간예보사업제도가 시행되면서 기상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처음 등장했다. 기업들은 날씨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면 손실을 최소화해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날씨 분석을 의뢰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날씨변동이 심했던 2010년의 한파, 2011년의 잦은 폭우, 2012년 폭염 때에 날씨 분석 의뢰가 급증했었다.

기상 컨설턴트의 활동은 각 기업의 손실을 줄여주고, 이득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경제 전체적으로 경기변동의 진폭을 줄여준다는 점에서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경기변동이란 경제활동 수준이 상승과 침체를 반복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편, 단기적인 경기변동을 거쳐 장기적으로 경제 전체가 한 단계 성장하는 현상을 경제성장이라고 한다. 단기적인 경기변동이 모여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상승과 침체의 진폭이 크지 않을수록 보다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기상 컨설턴트의 역할이 거시경제적인 의미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의 기업들에 생산량 및 가격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경직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날씨 급변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충격이 발생하는 경우, 기업들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기상 컨설턴트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산업기상정보를 활용해 위험요인을 분석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예상하지 못한 충격으로부터 보호한다. 날씨 변동 위험요인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 기상 컨설턴트들의 활동이 경제 전체적으로는 침체의 폭을 낮춰 경기변동의 진폭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상정보가치 최소 3조원

직업으로서의 기상 컨설턴트의 미래는 매우 유망하다. GDP의 약 80%가 날씨와 연관돼 있어 기상정보의 경제적 가치는 최소 약 3조원에서 최대 6조원으로 추정된다. 공짜정보라고 생각했던 기상정보가 기업의 상황에 맞게 세분화되고 특화된 ‘산업기상정보’의 옷을 입고 기업 경영의 영역으로 들어오자 경제적 가치를 갖는 정보로 탈바꿈 된 것이다. 또 지난 10년간 계속되는 기상이변 현상으로 인해 날씨에 대한 대응은 경영의 일부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기상산업은 2007년 300억원대의 시장에서 2011년 약 2200억원대의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지속가능한 신(新)수익 산업이자 블루오션 산업인 것이다.

한편, 최근 IT기술 발달로 대두된 ‘빅데이터(Big Data)’에서도 기상 컨설턴트의 성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빅데이터란 단지 엄청난 양의 데이터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분석해 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데이터를 의미한다. 기상 산업에서도 빅데이터를 이용한 컨설팅이 활발하다. 오랜 기간 쌓아온 날씨정보와 기업의 판매정보를 분석해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유의미한 관계들을 발굴해 경영전략 수립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기상 컨설턴트들은 주로 경영·경제학과 통계학 전공자들로 구성돼 있다. 기상학 전공자들만으로는 빅데이터 시대의 정량적인 분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상경계열 전공자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에너지·항공 등 다양한 분야 전파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상산업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많이 뒤처져 있다. 2009년 ‘기상산업진흥법’ 도입으로 산업으로 인정받았지만 기상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생소하다. 하지만 기상산업의 활용 속도를 볼 때 기상 컨설턴트도 짧은 시간 내에 널리 알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유통과 의류산업을 중심으로만 이용되던 기상 정보가 점차 에너지, 항공, 해운, 방송 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전파돼 활용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온도변화에 따라 상품의 진열순서를 바꾸고, 발주품목을 조절해 점주의 재고가 최소화되도록 관리체계를 바꾼 사례나 비와 눈이 오는 날의 빈도가 예년에 비해 높아져 야외골프장 수요 감소를 예측하고 실내골프장 규모를 늘려 이익을 높인 사례, 날씨에 따라 교통상황의 보고 빈도를 달리해 모니터링 비용은 줄이면서도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낮춘 사례 등 기상 정보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경영 환경은 매우 악화됐다. 경쟁이 치열해졌을 뿐만 아니라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요인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기업들에 예측하지 못한 위험은 손실의 발생 요인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위험요인인 것이다. 따라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맞물려 날씨라는 위험요인을 통제하는 기상 컨설턴트라는 직업 역시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향후 이들의 중요성이 보다 높아질 경우 이들은 개별 기업의 보호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을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경기변동 매니저’로서 자신들의 가치를 보다 더 키워나갈 것이다. 기상 컨설턴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김동영 KDI 연구원 kimdy@kdi.re.kr


용어 풀이

▨ 기상 컨설턴트= 날씨요인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위험요소들을 각종 기상정보를 통해 분석하고 그 결과를 중장기 예보에 활용해 날씨위험관리 전략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이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직업 중 하나로 경제의 불확실성과 맞물려 이들의 수요는 계속해서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경기변동(business fluctuation)= 경기변동은 실질 GDP가 장기추세선을 중심으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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