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묵은 헌법까지 고치고 에너지 교육 세제 개혁 추진…경기 하강 겹치며 반발 거세
개혁 성공땐 5년치 FDI 한번에…실패땐 '종이 호랑이'로 전락
기자가 멕시코시티에 머문 지난달 22일부터 나흘 동안 시내 중심가는 세 차례에 걸쳐 반나절씩 마비됐다. 대통령궁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로 서울의 세종대로에 해당하는 레포르마 거리가 수천 명의 시위대에 점거된 것이다. 하루는 시민단체가 에너지 분야 개방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다음날은 교원노조가 ‘교육 개혁 반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첫날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6시간 동안 차를 타고 왔다는 농부 알론소 몬트피오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국민의 재산인 석유를 미국에 넘기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2월 집권한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에너지와 세제, 교육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섰다. 이들 개혁 과제는 멕시코 경제가 당면한 현실과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반토막난 성장률 전망치
올 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경기 하강과 맞물려 개혁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멕시코 최대 유통업체로 월마트의 멕시코 법인인 월멕스는 지난달 최악의 매출 감소세를 보였다. 동일 점포 매출이 전달 대비 4.7% 줄어든 것이다. 1999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모자를 판매하는 손정옥 멕시코 한인회장은 “매출이 2011년 대비 70% 정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멕시코 경제를 이끌어온 내수가 침체되면서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 올초만 해도 올해 멕시코 성장률 예상치는 3.5%였지만 최근에는 1.7%로 반토막 났다.
가장 큰 이유는 올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의 온기가 아직 멕시코까지는 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제조업 수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른다. 미국이 1% 성장할 때 멕시코는 1.2% 성장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 푸에블라 공장의 자동차 생산 대수는 2011년 61만대에서 올해 52만대까지 감소했다. 미국에서 일하는 멕시코인들의 본국 송금액도 올 6월까지 10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7% 감소해 이에 의존하는 140만가구의 타격으로 이어졌다.
정부 재정도 삐걱대고 있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4%까지 치솟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정부는 적자재정을 편성해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지방정부에 발광다이오드(LED) 가로등 납품 사업을 하는 EG라이트닝의 최천식 사장은 “올 들어 정부 교부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아 지방정부들이 재정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개혁으로 재정 확충 노력
뒤떨어진 제도도 경제의 발목을 잡는 주된 요인이다. 한국의 택시 면허증처럼 거래되는 교사자격이 단적인 예다. 교원노조를 통해 누구든 권리금을 주면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세습도 가능하다. 그나마도 교사의 30% 이상은 일을 하지 않고 봉급을 받고 있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교사 자격시험을 도입해 공교육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에너지 개혁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과제다. 국영기업 페멕스가 독점하는 에너지 산업에 외국 기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의 참여를 늘려 투자를 확대하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게 목표다. 세계 9위 산유국인 멕시코는 국가재정의 3분의 1을 석유산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2000년대 초 350만배럴 수준이던 하루 석유 생산량은 지난해 250만배럴까지 줄었다. 탐사 및 시추기술이 낙후돼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투자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개혁을 통해 원유 생산량이 반등하면 그만큼 세수도 늘게 된다.
또한 세수 확충을 위해 기업과 중산층 이상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린다는 방침이다. GDP 대비 14% 수준으로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 등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낮은 세금징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소득세의 최고세율이 높아지고 사교육과 부동산 매매에 부가가치세가 매겨지는 등 개인들의 세금 부담도 늘어난다.
험난한 개혁의 길
하지만 멕시코시티를 뒤덮은 시위에서 보듯 개혁작업은 쉽지 않다. 에너지 개혁은 1938년 에너지 산업 국유화를 규정한 헌법 개정이 필수지만 중도좌파인 민주혁명당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중도우파인 국민행동당은 세제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급진적인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멕시코 사회 전반의 분위기다. 대학원 중심 대학 콜레히오 데 멕시코의 로페스 아이메스 교수는 “교육 개혁을 통해 교원들의 자질을 일률적으로 재단하려 하는 정부의 의도 자체가 문제”라며 “페멕스에 경영 자율권을 주면 외국 자본의 참여 없이도 에너지 산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높다. 26년간 교원노조를 이끌며 미국 샌디에이고에 100만달러짜리 저택을 사 멕시코로 출퇴근하던 엘바 에스테르 고르디요 노조위원장을 구속시킨 것이 단적인 예다.
해외에서는 페냐 니에토 정부의 개혁이 멕시코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노무라증권은 “에너지 개혁이 성공하면 최대 1000억달러의 투자금이 멕시코로 향할 것”이라며 “이는 지난 5년간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총액인 1050억달러와 맞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조사에서도 글로벌 펀드의 25%가 멕시코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할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FT는 “개혁 성공 여부가 멕시코를 진짜 ‘아즈텍 호랑이’로 거듭나게 할지, 그냥 종이 호랑이로 머물게 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멕시코시티=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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