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에너지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는 한동안 시위대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한국의 ‘집회 상식’과는 상반된 광경을 잇달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시위는 대통령궁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레포르마가(街)에서 진행됐다. 길가에는 의회 등 주요 공공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급진적 정치단체 ‘모레나’가 주도한 시위에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을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구호와 선동문이 넘쳐났다. 정부가 석유 개발사업에 민간 참여 허용을 추진키로 한 것은 석유자원을 글로벌 에너지회사에 팔아넘기려는 의도라는 비판이었다.
취재를 나설 때만 해도 한국과 같은 폭력시위를 예상했다. 민감한 주제를 다룬데다, 시위대가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주요 기관들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로웠다. 시위대 중간중간에는 교통경찰들이 한 명씩 섞여 있었다. 방패를 들고 관공서 입구를 지키는 5~7명의 경찰관들은 시위대 한가운데 섬처럼 고립됐지만, 한가로워 보였다. 시위대의 경찰 폭행이 일상화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여경까지 포함해 수십명이 빈약한 경찰 저지선을 만들었지만, 누구도 돌파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시위대들은 시위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북과 나팔 등 악기를 연주하며 손에 든 인형을 흔들어댔다. 지방에서 아이를 대동하고 가족 단위로 상경한 시위 참가자들은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플래카드와 유인물이 없었다면 축제 한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더 놀라운 것은 집회가 끝났을 때다. 약속된 집회 시간 종료가 가까웠음을 알리는 경찰 사이렌이 몇 차례 울리자 시위대는 곧 차도 점거를 풀었다. 대규모 집회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이곳저곳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서울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요즘 한국은 일부 민주노총 조합원의 4차선 도로 점거 시위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을 놓고 시끄럽다.애초에 2개 차선만 점거하겠다던 약속을 지켰다면 불필요했을 논쟁이다. 집회와 관련한 한국의 시민의식은 한국 소득의 절반인 멕시코에도 못 미치는 것인가.
노경목 국제부/멕시코시티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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