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순교자 정약종

입력 2013-10-14 22:00   수정 2013-10-15 04:2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나면 길 건너에 있는 서소문공원을 산책하곤 한다. 경의선 철길 옆의 이 소담한 공원에 커다란 탑이 하나 있다. 높이 15m의 주탑과 13m의 좌우 대칭인 두 탑으로 이뤄진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이다. 이곳에서 신유박해(1801년) 이후 참수 당한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기려 가톨릭 서울대교구가 세운 것이다.

왼쪽 탑에는 성인 반열에 오른 성(聖) 정하상 바오로 등 순교성인 44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모두들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때 희생된 사람들이다. 오른쪽 탑엔 아직 성(聖)자가 붙지 않은 순교자 명단이 적혀 있다.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맨 위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라는 이름이 보인다. 정하상 바오로는 그의 작은아들이다. 큰아들 정철상 가를로와 딸 정정혜 엘리사벳 이름도 있다.

정약종은 다산 정약용의 바로 윗형이다. 4형제 중 가장 늦게 천주교에 입교했지만 한국 최초의 평신도단체 회장을 맡았고, 체포된 뒤에도 배교를 거부하고 참수를 택했다.

그의 집안은 곧 천주교의 역사이자 순교의 역사다. 형제 중 첫째인 약현의 부인은 최초의 천주교 신자로 알려진 이벽의 누이이니 이벽은 약현의 처남이고, 사위는 황사영 백서사건의 주인공인 황사영이다. 이들 형제의 누이는 첫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이고,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은 외사촌이다. 그야말로 19세기 출구 없는 조선 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선 희망의 가족사요, 피로 물든 천주교 잔혹사의 주인공이다.

약종은 1791년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사른 ‘윤지충 사건’을 계기로 교회를 떠난 둘째형 약전, 동생 약용과 달리 신앙에 더욱 몰입했다. 황사영의 백서(帛書)에 ‘신해년 박해 이후에 형제나 친구들로서 여전히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정약종만 홀로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약종의 부인과 자녀들도 다 순교했으니 가히 모든 것을 바친 일생이었다.

약종을 포함한 초기 순교자 124위가 곧 복자(福者·성인 전 단계)로 추대될 전망이다. 이르면 내년 가을 시복식에 맞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도 추진하는 모양이다. 1984년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 땅에 입맞추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 그때 103위 시성식은 여의도광장에서 열렸는데 이번 시복식 장소는 서소문 공원이면 어떨까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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