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자 미소를 머금은 40여명의 여인이 반긴다. 세련된 ‘차도녀’는 아니지만 하나같이 넉넉하게 품어줄 듯한 어머니 같은 여인들이다. 이유는 재료에 있다. 캔버스가 아니라 화전민이 쓰던 나무 기와인 ‘너와’가 주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의 힘이다.
원로작가 윤석남 씨가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다음달 24일까지 여는 개인전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는 작가의 표정만큼이나 편안함을 안겨준다. 윤씨는 어머니의 모성과 강인한 생명력, 현대 여성의 불안한 내면을 작품 주제로 삼아온 ‘한국 페미니즘의 대모’다.
그는 여성성을 인위적 강제가 만연한 남성 중심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넉넉히 품어주는 자연에서 찾는다. 이는 너와에 그린 40여점의 여인상에서 두드러진다.
작가가 너와에 얼굴을 그리게 된 사연은 사뭇 숙명적이다. 서울의 한 유명 빵집에 갔다가 그곳 주인으로부터 30년간 보관해 온 너와를 무상으로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던 것. 작가는 오랜 풍상을 겪으며 거친 옹이와 나이테만 남은 너와 조각 속에서 은밀히 감춰진 여인의 형상을 발견한다. 옹이는 여인의 눈이나 입이 되고 나무의 불룩한 부분은 여인의 가슴이 됐다. 나뭇결을 따라 그린 얼굴선은 검정 아크릴로 그렸지만 먹선보다 더 은은한 멋을 풍긴다.
너와 그림 안쪽 전시실은 ‘그린 룸’으로 꾸며졌다. 가로세로 각각 30cm의 정방형 녹색 한지를 가위로 오려내 벽에 십자말풀이 퍼즐처럼 격자형으로 배치하고 바닥에는 초록색 구슬을 깔았다.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행동을 반성하고 그런 가운데 희생된 동식물의 영혼을 달래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됐다.
윤씨는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것을 포용하게 된다”며 “무엇이든 섣부르게 재단하는 인위적인 강제보다는 포용의 힘이 더 크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02)720-1524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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