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5년…美 기업 혁신 기피 등 보수적 변화
기업윤리 넘어 리스크 관리·정보 수집 중요성 커져 CEO의 내·외부 소통 능력이 경영 성패 좌우
데이비드 슈미트라인은
데이비드 슈미트라인 학장은 미국 브라운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2007년까지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마케팅 교수로 일했으며 2007년부터는 MIT 슬론스쿨 학장을 맡고 있다.
기업 마케팅 활동의 효과 측정, 시장 조사 설계, 효율적 커뮤니케이션 전략 등을 주로 연구해 이 분야에서 4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슈미트라인 학장은 또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바슈앤드롬 포드자동차 휴렛팩커드 존슨앤드존슨 타임워너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에서 자문을 맡고 있다.
최근 마케팅 전략에 대한 질문에 슈미트라인 학장은 일반인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문화 마케팅에 주력한 한국의 현대카드를 예로 들며 “과거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소비자가 직접 기업과 제품의 성격을 규정하도록 하는 일종의 ‘밀고 당기기’ 커뮤니케이션이 최근의 추세”라고 말했다.
“어디에 리스크가 있는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 이를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졸업생을 더 많이 배출하는 것이 슬론스쿨의 목표입니다.”
세계 최고 경영대학 중 하나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스쿨의 데이비드 슈미트라인 학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슬론스쿨을 포함한 미국 톱 경영대학원들의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이 복잡한 시스템 리스크를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슈미트라인 학장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27년 동안 마케팅 교수로 재직하다 2007년 10월부터 슬론스쿨 학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의 존재 목적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고,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복잡다단한 리스크를 예측·관리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가 이 시대가 원하는 비즈니스 리더”라고 말했다. 다음은 슈미트라인 학장과의 일문일답.
▷2008년 금융위기 이후 5년이 지났다. 가장 큰 기업 환경의 변화는 무엇인가?
“두 가지 종류의 변화가 있다. 하나는 비교적 단기간에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기 어려운 변화다. 많은 기업이 위기를 거치면서 보수적이 됐다. 현금을 손에 쥔 채 신제품 개발이나 신시장 개척을 꺼렸다.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시간이 흐르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돼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다시 늘리고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면 과거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변화는 무엇인가?
“기업의 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회의적 시각이다. 소비자 투자자 직원 언론 등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단순한 환경, 도덕, 지배구조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국가와 지역 사회에 왜 금융회사 IT회사 혁신적 식품회사가 있어야 하고, 이런 기업들이 사회에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앞으로 기업의 리더들은 이런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받을 것이다. 과거에는 법과 윤리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주 이익을 극대화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도록 허용됐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이미 많은 기업의 이사회가 최고경영자를 선택할 때 이 같은 기업의 존재 이유에 관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최우선으로 살펴보는 추세다.”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예컨대 골드만삭스와 JP모간 같은 금융 회사들이 왜 이 사회에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에 CEO들이 답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금융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자본이 가장 생산적인 곳에 쓰일 수 있도록 전달하는 역할, 두 번째는 리스크를 이해하고 기꺼이 감수하려는 개인이나 조직에 리스크(투자기회)를 전달하는 역할이다. 금융회사들이 이런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직원들과 사회를 설득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은 다시 금융업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한 불안한 시각이 여전하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하겠다. 금융위기 직후 사람들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를 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리하기에 너무 커버린 은행(too big to manage)’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난해 JP모간체이스 런던 지점의 60억달러 투자 손실, 즉 ‘런던 고래 사건’이 좋은 사례다. 과거에 비해 리스크의 성격이 복잡해진 것만큼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도 정교해져야 한다. 단지 금융회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과거보다 훨씬 정교하고 발전된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갖춰야 하게 됐다.”
▷리스크 관리가 기업 경영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세상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역동적이다. 상호연관성과 복잡성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일개 기업 입장에서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매년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효율적 운영을 위해 글로벌 공급망을 매우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같이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은 일본에서 대지진이 나거나 태국에서 홍수가 발생하면 다 같이 붕괴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기업의 리더들은 잠재적 리스크를 이해하고, 전망하고, 측정하기 위한 정보 능력을 갖춰야 한다.”
▷리스크 관리나 정보 수집을 전담할 부서를 만들어야 하나?
“이미 최고리스크책임자(CRO)를 둔 기업이 많다. 하지만 별도 조직을 만들고 약간의 파워를 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전사적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 앞으로 주주나 이사회는 ‘만약 2주 동안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의 매우 어려운 질문을 경영진에 던질 것이다.”
▷경영대학원들이 기업 윤리를 가르치는 데 실패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경영대학원들은 물론 기업 윤리를 가르친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성인들에게 윤리를 가르친다고 그들의 행동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금융위기의 본질을 생각해보자. 복잡한 파생상품과 자산 거품이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리스크에 관한 문제다. 경제에는 언제나 거품이 끼게 마련이다. 거품에 대한 경고가 나오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감수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의 선택 문제다. 그리고 현 상황을 진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다. 물론 2007년같이 은행들이 자본금의 30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고 있는 상황에서 ‘잠깐만, 너무 위험이 크다’고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슬론스쿨을 포함한 미국의 톱 경영대학원들이 2008년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복잡한 시스템 리스크를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은 졸업생들이 근거 있는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에 리스크가 있는지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경영대학원 입학생들의 졸업 후 희망은 과거와 달라졌나?
“그렇다. 내 생각에 요즘 MBA 학생들은 과거에 비해 더 사려 깊다. 최악은 1999년이었는데 그때는 모든 사람이 인터넷 붐을 타고 수년 안에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되는 꿈을 꿨다. 하지만 지금은 돈보다는 미래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할 혁신적인 회사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 원한다.”
▷한국 경영대학원들에 해줄 조언이 있다면?
“MBA 프로그램은 크게 마케팅 전략 회계 재무 등 비즈니스 실무를 가르치는 데 주안점을 두는 학교와 리더십 창조성 혁신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학교로 나뉜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10년 전과 현재, 그리고 10년 후에 기업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무엇을 가르칠지 결정해야 한다.”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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