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로 위장한 외국계 '규제 허점' 파고들었다

입력 2013-10-22 20:58   수정 2013-10-23 03:46

시내면세점 허가 11개사 중 4곳 사업권 반납
관세청, 효과 논란에도 中企 지원책 또 내놔



김해국제공항 DF2(주류·담배) 면세점 사업자로 사실상 외국계 기업이 선정된 것은 예견된 결과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대기업을 배제하면 국내 중소·중견기업보다 자금력에서 앞선 외국계 기업이 사업권을 가져가기 십상이라는 점에서다. 정부의 중소·중견기업 면세점 육성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22일 김해국제공항 DF2 면세점 사업자로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를 선정했다. 이 회사는 세계 2위 면세점 기업인 스위스 듀프리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 관계자는 “3년간 면세업을 해온 국내 기업 토마스줄리가 듀프리와 합작한 회사”라며 “듀프리의 이름을 빌리고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받지만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업계에서는 사실상의 자회사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의 사비에르 로시뇰 이사는 듀프리의 아시아·아프리카 담당 최고운영책임자(COO)이며 이 회사 지분 70%는 듀프리인터내셔널에이지라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듀프리 측은 지분율에 대해선 공개를 거부했다.

공항공사는 중소기업 면세점을 육성한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사를 배제한 채 DF2 입찰을 진행했다.

대기업이 배제된 면세점 사업자 입찰은 순조롭지 못했다. 입찰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은 공항공사가 정한 최저입찰가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했다. 이 때문에 세 차례나 사업자 선정이 유찰됐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자격을 중소기업으로 제한하자 글로벌 기업인 듀프리가 중소기업으로 가장한 사실상의 자회사를 만들어 국내시장에 우회적으로 진출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면세점 시장에서 중소·중견기업 비중을 높이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이날 중소·중견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을 현재 7개에서 2018년까지 15개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내용의 ‘면세산업을 통한 중소기업 성장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면세점 매장 수 비율을 60% 미만으로 하고 중소·중견기업 비율은 20% 이상으로 하는 내용의 관세법 시행령 개정안도 입법예고된 상태다.

면세점 사업 자체가 중소·중견기업이 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면세점 사업의 성패는 유명 브랜드를 얼마나 많이 유치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인지도가 낮고 구매력이 약한 중소·중견기업이 유명 브랜드를 유치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지난해 시내 면세점 사업 허가를 받은 11개 중소·중견기업 중 4곳이 사업권을 반납했고 나머지 7곳도 아직 개점을 못하고 있다.

유승호/임원기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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