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 위주 라이브 연주…현장감·생동감 불어넣어
주인공 인우에만 과부하
2막 중간쯤부터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 관객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애써 눈물을 참거나 울음을 삼키는 모습과 소리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첫사랑을 잊지 못해, 사랑해서는 안 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 고뇌하고 아파하는 모습에 극 초반부터 차곡차곡 쌓인 애틋한 정서로 가득 찬 객석이 감응한다.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원작 영화와는 또 다른 감성으로 아련한 첫사랑의 드라마를 풀어낸다. 2001년 개봉한 이병헌 이은주 주연의 동명 영화와 같은 스토리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날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게 하고 사라진 여인(태희)이 17년 만에 고교 남학생(현빈)으로 나타나자, 제자인 그와 ‘금기의 사랑’을 하게 되는 교사(인우)의 이야기다.
영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동성애와 환생을 소재로 한 운명적 사랑을 절제된 영상 언어와 섬세한 내면 심리 묘사로 담담하게 그려 호평받았다. 뮤지컬은 이제는 낡고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과 시적인 가사, 정교하고 세밀한 무대 언어를 통해 보다 감성적이고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뮤지컬 공연의 장점과 특성을 잘 살렸다. 회전무대와 여러 개의 미닫이문 등을 활용한 시공간 전환과 장면 연출이 매끄럽고, 현악 위주의 라이브 연주가 극의 현장감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대사와 노래가 적절하게 배합되고, 여러 역할을 하는 앙상블도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영화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살리면서 무대에 알맞게 각색한 대본도 짜임새 있다.
다만 인우에게 ‘과부하’가 걸린 느낌이다. 극이 인우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상대 역인 태희의 속내와 매력이 영화만큼 드러나지 않는다. 현빈이 전생에 태희였음을 깨닫고 기억하는 장면도 급작스럽다. 극의 하이라이트인 교통사고 장면에서 현빈과 태희가 인파 속에서 반복적으로 뒤바뀌는 모습도 기대만큼의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커튼콜이다. 두 시간 넘게 좋은 음악을 들려준 현악 5중주단 등 연주자들에게 박수 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배우들이 차례로 나와 인사한 후 사전에 준비된 앙코르 송을 부르는 것으로 커튼콜을 끝낸다. 무대가 좁아 객석 옆 상단에 보이지 않게 마련된 연주석을 향해 박수를 보내는 것을 빼먹는다.
이는 공연을 함께 완성한 동료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연주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관객의 권리도 빼앗는 것이다. 몇몇 관객만이 아쉬운 듯 커튼콜 이후 퇴장 시 흐르는 마무리 음악까지 객석에 남아 경청한 후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공연은 내달 17일까지, 6만~8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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