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법철학자이자 시카고대 석좌교수인 마사 누스바움은 법학과 학생들과 함께 찰스 디킨스,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의 작품을 읽는다. 왜 변호사나 재판관, 정치인이 될 학생들과 문학 작품을 읽을까. 문학에서 얻는 공감과 상상력, 부드러운 감정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과 함께 유엔대학 세계개발경제연구소에서 한 국가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방법을 공동연구해 유엔의 인간개발지수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소득 수준뿐만 아니라 교육, 건강, 정치적 권리, 민족, 인종 등을 포괄하는 삶의 질을 측정하는 방법을 창안한 그가 문학의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 법관들이 문학을 읽어야 하나
그는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간 삶에 대한 복합적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점점 더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충격을 받았다”며 강의 시간마다 묻는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이거나 팍팍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안식처일 뿐인가, 아니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인가.
그의 명저《시적 정의》(궁리 펴냄)에 해답이 들어 있다. 문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정의로운 공적 담론과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요소가 되는지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가령 경제성장률 4%, 1인당 국민총생산 2만달러 등의 숫자로만 보면 세상은 그런 대로 살 만해 보인다. 총합이나 평균 수치의 오묘한 힘 덕분이다. 빈곤율 45%니, 세계 기아인구 4000만명 증가 등의 뉴스가 남의 일처럼 보이는 것도 그것이 추상화된 숫자이기 때문이다. 반면 눈앞에 구체적인 이름과 이야기를 가진 인물이 있다면, 우리는 그가 처한 상황에 쉽게 반응을 보인다. 마치 내 일처럼 공감하고 행복과 기쁨, 고통, 두려움을 공감한다. 세상을 숫자와 기호로 보는 것과 소설을 통해 보는 것은 정말 다르다.
베스트셀러 10권 중 7권이나
‘합리적 감정’에 대한 생각 또한 그렇다. 감정은 오랫동안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기에 공적 추론 과정에서 배제돼 왔다. 이런 한계를 문학은 단숨에 뛰어넘는다. ‘각각의 삶에 스민 신비와 복잡성’을 읽으며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람으로서 공유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적 상상력은 재판관들이 판결을 내리고, 입법자들이 법을 제정하며, 정책 입안자들이 다양한 인간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행히 최근 서점가에서 문학이 살아나고 있는 모양이다.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소설이 네 권이나 들어 있다. 국내 작가보다 외국 작가들이 많은 게 아쉽기는 한데, 몇 년 만에 빛을 본 노벨문학상의 특수도 한몫한 것 같다. 에세이도 세 권이나 10위 안에 들었다.《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송정림, 나무생각) 등 따뜻한 시선으로 삶의 이면을 비추는 내용이 많다. 자기계발서로 도배되다시피 했던 예년의 목록과 사뭇 다르다.
누스바움 교수의 바람처럼 이 가을에 문학을 읽는 공직자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인문학을 처세술쯤으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문학과 역사, 철학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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