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류 선봉장' 박대하는 벤처캐피털

입력 2013-10-22 21:41   수정 2013-10-23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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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혁 증권부 기자 otto83@hankyung.com


“중소 엔터테인먼트회사 대표라고 했더니 사기꾼 보듯 하더군요. ‘딴따라’가 왜 투자시장을 기웃거리냐는 표정이었죠.”

지난 21일 저녁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들의 소모임에서 만난 A사 대표는 국내 벤처투자시장에서 ‘중소 엔터회사’가 투자를 유치하는 게 만만찮다고 호소했다. A사는 규모는 작지만 뛰어난 음반 제작과 공연기획으로 업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운영자금이 필요해졌고, 벤처투자시장을 찾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몇몇 벤처캐피털을 찾아갔다가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매출 100억원 이상 제조회사 투자에만 관심 있다”는 한결같은 답변 때문이었다.

‘가수 육성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는 벤처기업 B사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 회사의 사업모델은 해외 제작사 등과 협약을 맺은 뒤 외국인 연습생들을 한국에 데려와 한국식 트레이닝을 시키는 것이다. 이들이 가르친 한 아이돌그룹은 현지 음악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세 확장을 꿈꾸던 B사 대표는 수소문 끝에 문화콘텐츠 투자를 전문으로 한다는 C벤처캐피털을 찾았다. 그러나 담당심사역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영화나 드라마만 투자할 뿐,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잘 몰라서 아예 검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엔터업계 관계자들은 차세대 한류가 ‘현지화’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외국 가수가 어릴 때부터 한국식 훈련을 받고, 한국의 제작과 공연방식을 따르면서 한류가 현지 엔터산업에 깊숙이 뿌리내릴 것이란 얘기였다. 이를 위해선 각 분야에 강점을 보유한 한국의 중소 엔터회사들이 해외로 많이 진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뒤따랐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을 밝힌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향후 5년간 총 75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문화콘텐츠와 관련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이 자금을 집행하게 될 벤처캐피털들은 아직 ‘엔터투자’에 대한 심사 의지와 역량이 크게 부족해 보인다. 해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엔터회사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오동혁 증권부 기자 otto8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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