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처럼 생긴 철제 프레임에 갇힌 조롱박들이 놀랍게도 자신의 몸을 그런 구조에 알맞은 모습으로 적응해나간다. 그렇게 자란 조롱박은 어느 것도 같은 것이 없다. 어떤 녀석은 뱀처럼 기다란 모양으로, 또 다른 녀석은 터질 듯한 심장의 모습으로 변해 조롱박의 본래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재미교포 2세 작가 로버트 리가 소격동 옵시스아트에서 11월17일까지 ‘흉내내기’ 라는 제목 아래 선보이는 설치 작품들은 생물의 본성에 작가가 개입함으로써 그 생명력이 의도하는 대로 드러나도록 한 것들이다. 아무리 구속을 가해도 생명체는 자신의 몸을 변형시킬망정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그 불굴의 생명력 앞에서 관객은 묘한 쾌감과 함께 자연의 경이를 체험하게 된다.
사람을 지탱하는 보조물인 지팡이들이 사람의 도움 없이 서로를 의지해 계단 위에 당당히 서 있는 작품은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기발한 은유다. 작가의 몸을 테마로 한 사진 작품들 역시 인간 신체는 어떤 조건 속에서도 균형을 잡아 나간다는 점을 깨우쳐준다.
로버트 리는 원래 예일대 영문과를 다니다 자동차 사고를 겪은 후 미대로 전과해 예술가가 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컬럼비아 대학원을 마친 후 지금은 시애틀의 코니시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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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사진설명-자신의 작품 ‘Zucca Teleplasty’ 앞에 선 로버트 리 /정석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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