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오스트리아 예술기행 <1> 빈
오스트리아의 빈에 머물렀다. 대체 19세기말 이곳엔 어떤 기운이 흘렀기에 지금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위인들이 터를 잡고 영역을 구축하고 문화를 생성하며 산 것일까.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에곤 실레·오스카 코코슈카, 건축가 오토 바그너·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아놀드 쇤베르크,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모두 동시대의 빈에서 호흡했다. 지적인 분위기가 도시 구석구석 배어있다. 그래서인지 발만 내디뎌도 호박마차에 올라탄 신데렐라처럼 우아하게 변신한 듯한 착각이 일어 마음이 설렌다. 마치 빈에서 태어나 빈에서 자란 ‘비엔니즈’인 양, 한 발 한 발 도시 탐방을 시작했다.
○빈 예술의 토대, 합스부르크 왕가
유럽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합스부르크 왕가는 세기 말의 빈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부상하게 된 토대가 됐다. 현재까지도 오스트리아의 ‘국민 어머니’로 사랑받고 있는 합스부르크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수차례의 왕위계승 전쟁과 개혁 정치, 결혼 정책을 통해 부강한 오스트리아를 만들었다. 오스트리아의 결혼정책은 특히 유명한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10여명의 딸들을 유럽 각지로 시집보내 영토를 확장하고 자국의 입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했다.
시집 간 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마리 앙투와네트다. 합스부르크의 수도였던 빈은 정치가 안정되고 부유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이 됐다. 천재와 예술가들, 수많은 예술품들이 빈으로 몰려들었다. 예술가들은 창작했고, 돈이 많은 왕족과 귀족들은 향유했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이 활약했고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축물인 슈테판 대성당을 중심으로 뻗은 구시가지 거리 곳곳에는 아직까지 그들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위대한 천재 음악가들의 도시답게 슈테판 거리 곳곳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들이 넘쳐난다. 누군가는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중세 유럽의 돌길 위로 피아노를 끌고 나와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를 펼치고 박수를 받는다. 얼마 전 동영상으로 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피아노 협연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슈테판 거리에 석양이 내리면 많은 연주가들이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수백개의 음표들이 붉게 물든 하늘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복제와 실제의 간극, 벨베데레 궁전의 클림트
오스만튀르크와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구한 영웅, 오이게 공의 여름궁전이었던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이곳에 전시된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서다. ‘키스’는 클림트의 황금시기(클림트가 실제 금박과 금색 물감을 주로 사용하던 1907~1908년)에 탄생한 작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 프린트된 대작이다.
꽃이 가득한 들판 위에서 부둥켜 안은 연인, 남자의 입맞춤을 기다리며 꿈꾸는 듯한 여인의 얼굴이 유독 아름다운 ‘키스’를 실제로 본다는 기대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벨베데레 궁전 내부의 지도를 따라 걷다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멈췄다.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돌면 보일 것이다. 짝사랑의 대상 앞에서 마음을 감춘 채 마주서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을 것 같다. 호흡을 가다듬고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그 이후는 온전히 ‘홀렸다’는 표현이 맞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여인이 힘주어 구부린 발끝의 디테일, 입맞춤의 순간을 기다리는 여인의 붉은 뺨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얼굴을 숙인 남자의 표정마저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 묘사는 마치 실제로 키스를 하는 연인을 마주한 듯 에로틱했다.
실제를 마주하게 되면 수많은 엽서와 프린트로 보던 키스는 마치 껌종이처럼 하찮아진다. 하지만 이미 ‘키스’에 반한 여행자는 모조품 두루마리를 들고 지폐를 건넨다. ‘언젠가 다시, 이 그림을 보는 것만을 목적으로 비행기를 타는 날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감동이었다. 고백하건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마음이 일었다. 가슴 한쪽에서 무언가가 울컥했고, 동시에 눈물이 살짝 났다. 벨베데레 궁전에는 ‘키스’를 비롯해 ‘유디트’ ‘아담과 이브’ 등 많은 클림트의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교향곡이 그림으로 흐르는 빈 분리파 전시관
벨베데레 궁전을 벗어나 클림트의 자취를 따라가기로 했다. 칼스 플라츠 거리 방향으로 30분 정도 걸으면 건축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의 역작이자 빈 분리파 운동의 상징인 빈 분리파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전시관은 오스트리아 50센트 동전에도 새겨져 있을 만큼 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흰 벽면 위로 솟은 금박을 입힌 나뭇잎 문양이 조각된 반구형의 지붕 아래에는 금빛으로 이렇게 쓰여있다. ‘모든 시대에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게 자유를.’
빈 분리파는 표어에 걸맞게 회화, 건축, 공예를 두루 아우르는 총체적 예술 활동을 지향하며 빈의 문화·예술계를 풍요롭게 했다. 아르누보의 독일어권 이름인 ‘유겐트 스틸’도 이곳에서 태동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기존 미술계에 반기를 들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으며 당시 오스트리아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마네, 고갱 등의 외국 작가를 소개하는 등 새로운 모색에 여념이 없었다.
이 진보적인 예술단체의 초대 수장이 바로 클림트다. 클림트는 빈 분리파 전시관에 높이 2.2m, 길이 34m에 걸쳐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형상화했다. 베토벤을 모티브로 한 빈 분리파의 열네 번째 전시의 구성 중 일부였던 ‘베토벤 벽화’는 관람객들에게 예술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실내 장식, 조각 등 다양한 분야와 어우러졌다. 그 중 백미는 개막일에 구스타프 말러가 직접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다는 것이다. 과거 한 순간으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선택할 순간은 빈 분리파의 열네 번째 전시 개막일, 바로 이곳이다.
꿩 대신 닭을 먹는 심정으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찾아 들었다. 벌거벗은 여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간청하는 ‘행복의 추구’로 시작되는 벽화는 타이푼을 형상화한 고릴라 곁으로 갈망, 음란, 무절제를 상징하는 타이푼의 세 딸 고르곤이 등장하는 ‘적대적인 힘’을 거쳐 연인이 포옹하고 키스하는 ‘온 세계에 보내는 입맞춤’으로 끝을 맺는다. 3면에 걸쳐 밀접하게 이어지는 벽화는 웅장하고 유려하며 클림트의 느낌 그대로 관능적이다. 빈 분리파 전시관을 나와 화가 에곤 실레의 작품이 가득한 레오폴드 뮤지엄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온전히 그림만 보며 빈 구석구석을 누비는 가을의 하루가 벅차게 감동스럽다. 도시는 많은 예술가들을 품었고, 그들이 창작한 작품들은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어루만지고 감동으로 위로한다. 예술가의 생의 흐름과 결말을 알고 있기에 작품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볼 거리가 많아 눈 깜빡이는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으니, 아름다운 도시 빈을 제대로 향유하려면 시간이 넉넉히 필요하겠다.
여행 팁
공용어는 독일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에 능통하다. 화폐는 유로를 사용한다.
대한항공이 인천~빈 노선을 주 3회(화, 목, 토) 운항한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트램, 버스가 있다. 티켓은 공용으로 사용되며 정류장 자판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일회 이용권(2유로), 24시간(6.70 유로), 48시간(11.70유로), 72시간(14.50유로) 이용권이 있다. 빈은 볼거리가 많아 체류기간이 길기 때문에 장시간용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빈 카드를 구입하면 처음 펀칭 후 72시간 동안 지하철, 트램, 버스 이용이 무제한 가능하고 약 210개의 관광명소에서 할인을 적용받을 수 있다. 단 카드 구입 때 제공된 쿠폰을 제시해야 한다. 가격은 19.90유로. 자세한 정보는 해당 사이트 (vienna.info/en/travel-info/vienna-card) 참조. 교회나 성당은 틈 나는 대로 들어가 볼 것을 권한다.
빈=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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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예술기행 <1> 빈
오스트리아의 빈에 머물렀다. 대체 19세기말 이곳엔 어떤 기운이 흘렀기에 지금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위인들이 터를 잡고 영역을 구축하고 문화를 생성하며 산 것일까.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에곤 실레·오스카 코코슈카, 건축가 오토 바그너·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아놀드 쇤베르크,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모두 동시대의 빈에서 호흡했다. 지적인 분위기가 도시 구석구석 배어있다. 그래서인지 발만 내디뎌도 호박마차에 올라탄 신데렐라처럼 우아하게 변신한 듯한 착각이 일어 마음이 설렌다. 마치 빈에서 태어나 빈에서 자란 ‘비엔니즈’인 양, 한 발 한 발 도시 탐방을 시작했다.
○빈 예술의 토대, 합스부르크 왕가
유럽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합스부르크 왕가는 세기 말의 빈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부상하게 된 토대가 됐다. 현재까지도 오스트리아의 ‘국민 어머니’로 사랑받고 있는 합스부르크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수차례의 왕위계승 전쟁과 개혁 정치, 결혼 정책을 통해 부강한 오스트리아를 만들었다. 오스트리아의 결혼정책은 특히 유명한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10여명의 딸들을 유럽 각지로 시집보내 영토를 확장하고 자국의 입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했다.
시집 간 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마리 앙투와네트다. 합스부르크의 수도였던 빈은 정치가 안정되고 부유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이 됐다. 천재와 예술가들, 수많은 예술품들이 빈으로 몰려들었다. 예술가들은 창작했고, 돈이 많은 왕족과 귀족들은 향유했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이 활약했고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축물인 슈테판 대성당을 중심으로 뻗은 구시가지 거리 곳곳에는 아직까지 그들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위대한 천재 음악가들의 도시답게 슈테판 거리 곳곳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들이 넘쳐난다. 누군가는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중세 유럽의 돌길 위로 피아노를 끌고 나와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를 펼치고 박수를 받는다. 얼마 전 동영상으로 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피아노 협연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슈테판 거리에 석양이 내리면 많은 연주가들이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수백개의 음표들이 붉게 물든 하늘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복제와 실제의 간극, 벨베데레 궁전의 클림트
오스만튀르크와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구한 영웅, 오이게 공의 여름궁전이었던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이곳에 전시된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서다. ‘키스’는 클림트의 황금시기(클림트가 실제 금박과 금색 물감을 주로 사용하던 1907~1908년)에 탄생한 작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 프린트된 대작이다.
꽃이 가득한 들판 위에서 부둥켜 안은 연인, 남자의 입맞춤을 기다리며 꿈꾸는 듯한 여인의 얼굴이 유독 아름다운 ‘키스’를 실제로 본다는 기대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벨베데레 궁전 내부의 지도를 따라 걷다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멈췄다.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돌면 보일 것이다. 짝사랑의 대상 앞에서 마음을 감춘 채 마주서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을 것 같다. 호흡을 가다듬고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그 이후는 온전히 ‘홀렸다’는 표현이 맞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여인이 힘주어 구부린 발끝의 디테일, 입맞춤의 순간을 기다리는 여인의 붉은 뺨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얼굴을 숙인 남자의 표정마저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 묘사는 마치 실제로 키스를 하는 연인을 마주한 듯 에로틱했다.
실제를 마주하게 되면 수많은 엽서와 프린트로 보던 키스는 마치 껌종이처럼 하찮아진다. 하지만 이미 ‘키스’에 반한 여행자는 모조품 두루마리를 들고 지폐를 건넨다. ‘언젠가 다시, 이 그림을 보는 것만을 목적으로 비행기를 타는 날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감동이었다. 고백하건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마음이 일었다. 가슴 한쪽에서 무언가가 울컥했고, 동시에 눈물이 살짝 났다. 벨베데레 궁전에는 ‘키스’를 비롯해 ‘유디트’ ‘아담과 이브’ 등 많은 클림트의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교향곡이 그림으로 흐르는 빈 분리파 전시관
벨베데레 궁전을 벗어나 클림트의 자취를 따라가기로 했다. 칼스 플라츠 거리 방향으로 30분 정도 걸으면 건축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의 역작이자 빈 분리파 운동의 상징인 빈 분리파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전시관은 오스트리아 50센트 동전에도 새겨져 있을 만큼 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흰 벽면 위로 솟은 금박을 입힌 나뭇잎 문양이 조각된 반구형의 지붕 아래에는 금빛으로 이렇게 쓰여있다. ‘모든 시대에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게 자유를.’
빈 분리파는 표어에 걸맞게 회화, 건축, 공예를 두루 아우르는 총체적 예술 활동을 지향하며 빈의 문화·예술계를 풍요롭게 했다. 아르누보의 독일어권 이름인 ‘유겐트 스틸’도 이곳에서 태동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기존 미술계에 반기를 들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으며 당시 오스트리아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마네, 고갱 등의 외국 작가를 소개하는 등 새로운 모색에 여념이 없었다.
이 진보적인 예술단체의 초대 수장이 바로 클림트다. 클림트는 빈 분리파 전시관에 높이 2.2m, 길이 34m에 걸쳐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형상화했다. 베토벤을 모티브로 한 빈 분리파의 열네 번째 전시의 구성 중 일부였던 ‘베토벤 벽화’는 관람객들에게 예술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실내 장식, 조각 등 다양한 분야와 어우러졌다. 그 중 백미는 개막일에 구스타프 말러가 직접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다는 것이다. 과거 한 순간으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선택할 순간은 빈 분리파의 열네 번째 전시 개막일, 바로 이곳이다.
꿩 대신 닭을 먹는 심정으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찾아 들었다. 벌거벗은 여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간청하는 ‘행복의 추구’로 시작되는 벽화는 타이푼을 형상화한 고릴라 곁으로 갈망, 음란, 무절제를 상징하는 타이푼의 세 딸 고르곤이 등장하는 ‘적대적인 힘’을 거쳐 연인이 포옹하고 키스하는 ‘온 세계에 보내는 입맞춤’으로 끝을 맺는다. 3면에 걸쳐 밀접하게 이어지는 벽화는 웅장하고 유려하며 클림트의 느낌 그대로 관능적이다. 빈 분리파 전시관을 나와 화가 에곤 실레의 작품이 가득한 레오폴드 뮤지엄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온전히 그림만 보며 빈 구석구석을 누비는 가을의 하루가 벅차게 감동스럽다. 도시는 많은 예술가들을 품었고, 그들이 창작한 작품들은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어루만지고 감동으로 위로한다. 예술가의 생의 흐름과 결말을 알고 있기에 작품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볼 거리가 많아 눈 깜빡이는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으니, 아름다운 도시 빈을 제대로 향유하려면 시간이 넉넉히 필요하겠다.
여행 팁
공용어는 독일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에 능통하다. 화폐는 유로를 사용한다.
대한항공이 인천~빈 노선을 주 3회(화, 목, 토) 운항한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트램, 버스가 있다. 티켓은 공용으로 사용되며 정류장 자판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일회 이용권(2유로), 24시간(6.70 유로), 48시간(11.70유로), 72시간(14.50유로) 이용권이 있다. 빈은 볼거리가 많아 체류기간이 길기 때문에 장시간용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빈 카드를 구입하면 처음 펀칭 후 72시간 동안 지하철, 트램, 버스 이용이 무제한 가능하고 약 210개의 관광명소에서 할인을 적용받을 수 있다. 단 카드 구입 때 제공된 쿠폰을 제시해야 한다. 가격은 19.90유로. 자세한 정보는 해당 사이트 (vienna.info/en/travel-info/vienna-card) 참조. 교회나 성당은 틈 나는 대로 들어가 볼 것을 권한다.
빈=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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