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특별기획 '죽어가는 기업가 정신…불꺼진 성장엔진'
(中) 말라버린 도전정신 실패를 격려하라
'규제 홍수'…정부가 권장했던 지주社도 '발목'
실패 용인않는 풍토가 창업정신 가로막아
“골프 티샷하다 OB가 나도 배임죄로 걸릴까 두렵습니다. 볼은 페어웨이로 보내고 파4홀에선 네 번 만에 홀아웃을 해야 하는 게 임무잖아요.”
요즘 기업인들 사이에 오가는 골프 농담이다. OB는 주어진 임무에 반하는 ‘배신행위’인 데다 자신의 실수로 타인(동반자)이 이득을 취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의도(경영상의 판단)와 과정, 결과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걸려드는 배임죄의 불합리성을 성토하는 우스갯소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배임에 대해 그 행위의 결과에 상관없이 위험하기만 해도 범죄로 보는 위태범(危殆犯) 혹은 위험범(危險犯)으로 취급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패를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 ‘한국적 문화’에서는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을 꽃피우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이나 일부 대기업 공채로만 몰리고 창업전선에 뛰어들지 않는 것도 이런 풍토 탓이라는 지적이다.
◆기업가정신 말살하는 배임죄의 덫
‘걸면 누구나 걸린다’는 배임죄는 기업가정신을 압박하는 대표적인 규제라고 재계는 지적한다. 법 자체가 모호한 데다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많아서다. 같은 건을 놓고 1, 2, 3심 법원의 판단이 각각 다른 사례도 있다.
재계에 따르면 독일과 일본에도 배임죄 처벌 법규가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다. 독일은 기업인에게 배임죄를 적용하는 사례가 거의 없고, 일본은 ‘목적법’이어서 ‘이익을 꾀하거나 손해를 끼칠 목적’이 있어야 처벌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배임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범죄 구성 요건을 특정하지 않은 ‘개방적 구성요건’을 갖고 있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최 교수는 “1990년대 이전에는 한국도 일본처럼 배임죄를 적용하는 데 신중했지만 이후 기업인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적용 사례가 늘고 있다”며 “요즘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투기에 가까울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런 식의 배임죄는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있으면 배임죄에 걸려들 위험을 줄일 수 있겠지만 가만히 있어도 임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현행법 아래서는 기업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고 했다.
◆투자 가로막는 규제 홍수 시대
실시간으로 규제 현황을 공개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한국의 연도별 규제 수는 매년 1000개씩 늘고 있다. △2009년 1만1521개 △2010년 1만2241개 △2011년 1만3252개 △2012년 1만4548개 △2013년 1만5068개(10월28일 기준) 등이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규제 홍수시대라고 부를 만하다”며 “규제가 늘수록 실패를 무릅쓴 기업인들의 모험적인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규제들이 의결권(지배구조 규제) 및 경쟁제한(적합업종), 지주회사 행위금지, 신규 순환출자 금지(예정) 등으로 이어져 각종 투자와 신사업 창출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중기적합업종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아 외국 기업의 배만 불려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 정부가 지배구조가 투명하다며 적극 권장했던 지주회사도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지주회사(일반 및 금융지주회사) 수는 2005년 8월 25개에서 작년 9월 말 현재 115개로 늘었다.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자회사 간 공동투자를 할 수 없고 △다른 회사를 인수하더라도 지분율 규제(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를 받으며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매물로 나온 대형 기업의 인수전에 지주사가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상무)은 “기업가정신은 수많은 실패를 바탕으로 한다”며 “시도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은 기업인들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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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말라버린 도전정신 실패를 격려하라
'규제 홍수'…정부가 권장했던 지주社도 '발목'
실패 용인않는 풍토가 창업정신 가로막아
“골프 티샷하다 OB가 나도 배임죄로 걸릴까 두렵습니다. 볼은 페어웨이로 보내고 파4홀에선 네 번 만에 홀아웃을 해야 하는 게 임무잖아요.”
요즘 기업인들 사이에 오가는 골프 농담이다. OB는 주어진 임무에 반하는 ‘배신행위’인 데다 자신의 실수로 타인(동반자)이 이득을 취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의도(경영상의 판단)와 과정, 결과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걸려드는 배임죄의 불합리성을 성토하는 우스갯소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배임에 대해 그 행위의 결과에 상관없이 위험하기만 해도 범죄로 보는 위태범(危殆犯) 혹은 위험범(危險犯)으로 취급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패를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 ‘한국적 문화’에서는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을 꽃피우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이나 일부 대기업 공채로만 몰리고 창업전선에 뛰어들지 않는 것도 이런 풍토 탓이라는 지적이다.
◆기업가정신 말살하는 배임죄의 덫
‘걸면 누구나 걸린다’는 배임죄는 기업가정신을 압박하는 대표적인 규제라고 재계는 지적한다. 법 자체가 모호한 데다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많아서다. 같은 건을 놓고 1, 2, 3심 법원의 판단이 각각 다른 사례도 있다.
재계에 따르면 독일과 일본에도 배임죄 처벌 법규가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다. 독일은 기업인에게 배임죄를 적용하는 사례가 거의 없고, 일본은 ‘목적법’이어서 ‘이익을 꾀하거나 손해를 끼칠 목적’이 있어야 처벌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배임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범죄 구성 요건을 특정하지 않은 ‘개방적 구성요건’을 갖고 있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최 교수는 “1990년대 이전에는 한국도 일본처럼 배임죄를 적용하는 데 신중했지만 이후 기업인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적용 사례가 늘고 있다”며 “요즘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투기에 가까울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런 식의 배임죄는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있으면 배임죄에 걸려들 위험을 줄일 수 있겠지만 가만히 있어도 임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현행법 아래서는 기업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고 했다.
◆투자 가로막는 규제 홍수 시대
실시간으로 규제 현황을 공개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한국의 연도별 규제 수는 매년 1000개씩 늘고 있다. △2009년 1만1521개 △2010년 1만2241개 △2011년 1만3252개 △2012년 1만4548개 △2013년 1만5068개(10월28일 기준) 등이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규제 홍수시대라고 부를 만하다”며 “규제가 늘수록 실패를 무릅쓴 기업인들의 모험적인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규제들이 의결권(지배구조 규제) 및 경쟁제한(적합업종), 지주회사 행위금지, 신규 순환출자 금지(예정) 등으로 이어져 각종 투자와 신사업 창출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중기적합업종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아 외국 기업의 배만 불려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 정부가 지배구조가 투명하다며 적극 권장했던 지주회사도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지주회사(일반 및 금융지주회사) 수는 2005년 8월 25개에서 작년 9월 말 현재 115개로 늘었다.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자회사 간 공동투자를 할 수 없고 △다른 회사를 인수하더라도 지분율 규제(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를 받으며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매물로 나온 대형 기업의 인수전에 지주사가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상무)은 “기업가정신은 수많은 실패를 바탕으로 한다”며 “시도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은 기업인들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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