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을 할 때 법원의 ‘사채권자 집회’를 이용해 비협약 채권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채권자는 말그대로 사채를 가진 채권자를 말한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웅진에너지는 지난 9월 처음으로 사채권자 집회를 활용해 신주인수권부사채(BW) 소유자들의 조기상환청구권 요청을 금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오성엘에스티, ㈜STX 등이 잇달아 같은 방식을 도입해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사채권자 집회는 상법이 규정한 채권자들의 의결 방법이다. 각 채권 잔액을 기준으로 3분의 1 이상의 채권 보유자가 집회에 참석해야 하고, 참석자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는 사안에 대해서 해당 채권자 전체가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집회에서 의결된 내용은 추후 법원의 판단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웅진에너지는 산업은행에서 부실징후기업(C등급) 판정을 받은 뒤 워크아웃 추진을 거부하고 자체 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 사채권자 집회를 활용한 사례다. 이 회사는 BW 976억원 투자자들과 외화사채 6000만달러 투자자들을 모아 집회를 열고 BW에 대한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하고, 만기까지 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18일 이같은 집회 의결 내용을 확정했다고 채권단에 통보했다.
일단 웅진에너지가 물꼬를 트자 다른 기업들의 벤치마크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워크아웃 중인 오성엘에스티는 지난 10일 사채권자 설명회를 열어 채권의 출자전환 및 상환유예가 필요하다고 비협약 채권자들에게 알렸다. 이 회사는 내달 13일 집회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의결하기로 했다. 자율협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STX도 비협약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내달 15일 집회를 열 계획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협약 채권자의 참여를 얻어내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팬택은 2011년 비협약 채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채권 상환을 연장해주겠다는 동의서를 받았고, 2009~2011년 우림건설·동문건설·풍림산업 등은 비협약 채권자들의 모임을 갖고 채권 만기 연장 및 이자율 감면 등에 대한 동의를 얻어 구조조정을 했지만 법적 근거는 부족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사채권자 집회 제도가 활성화된다면 더 이상 개별적으로 동의서를 받을 필요 없이, 일부 채권자의 동의만으로 비협약 채권자 전체가 구조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신속한 구조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이 은행에서 주로 자금을 조달하던 과거와 달리 시장에서 회사채나 기업어음(CP)으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들에게 일정한 손실 분담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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